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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25. 2021

돌을 파먹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배좀벌레의비밀

2019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필리핀 보홀섬 (Bohol island)의 연해 강가에서 돌을 파먹는 신종 배좀벌레 (쉽웜, shipworm)을 발견했다고 저널 Proceedings of Royal Society B : Biological Sciences 6월 19일 자에 보고했다.*,**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10.../rspb.2019.0434

**https://phys.org/.../2019-06-shipworm-wood-river...


배좀벌레는 원래 나무를 파먹고 사는 조개 (이매패류 (二枚貝類))의 일종으로, 생김새는 커다란 구더기를 닮았다. 일견 개불의 친척쯤 되는 것으로도 보이기도 하다. '배좀'벌레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들은 원래 나무를 갉아먹고 그 섬유질을 소화하여 배출하는 식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 목조 선박의 밑바닥을 갉아먹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미국 과학자들이 발견한 신종 배좀벌레는 나무가 아닌 바위, 정확히는 석회암을 갉아먹고사는 것으로 보였다고 하는데, 나무는 그나마 유기물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탄산칼슘 밖에 없는 석회암에서 어떻게 어떤 에너지원을 찾아서 이들이 먹고사는 것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아마도 석회암 내부에 있는 지의류나 박테리아를 먹고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바위 덩어리 자체를 영양소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이들의 이름은 더 이상 쉽웜이 아니라 롹웜 (rockworm)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들 외에도 이매패강에 속하는 녀석들로 돌맛조개와 석공조개가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이들 역시 돌 (이암)이나 산호초 같은 단단한 덩어리를 껍데기에 있는 작은 갈퀴 등을 사용하여 파고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적어도 이암이나 산호초 자체를 먹지는 않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신종 배좀벌레와는 차이가 있다.


신종 배좀벌레들이 석회암을 뚫고 들어가 그것을 작은 모래로 배출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영위할 경우, 이들이 서식하고 있는 강가의 지형은 침식되어 바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강의 흐름이 바뀔 정도까지 영향이 누적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내륙 지형의 침식 작용이 꼭 비바람에 의한 것으로만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놀라운 발견일 수도 있다. 10 cm 내외의 작은 몸집을 가진 녀석들이지만, 이들이 모여서 바위를 갉아먹고 분해한다면, 수 천 년 후에는 없던 강이 생길 수도, 있던 강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으로 신종 배좀벌레가 바위를 갉아먹는 삶을 영위하게 되었는지는 어떻게 계속 그런 소화 메커니즘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현재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번 발견은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외계 생명체를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생명체 조건 경계선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미 판타지의 고전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JRR 톨킨도 그의 또 다른 판타지 작품 '호빗'에서 거대한 땅굴벌레 (the great earth-eater or were-worms)를 묘사한 바 있고, 실사 영화 ('호빗-다섯 군대의 전투')에서도 그 위용이 드러난 바 있는데 (아래 첨부 사진 참조), 



영화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에 등장하는 거대한 땅굴벌레

톨킨이 혹시나 바닷가에서 이 신종 배좀벌레를 관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 2 저그 종족의 유닛인 땅굴벌레의 이미지와도 오버랩이 많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가 달과 화성, 명왕성까지 탐사하고, 몇몇 탐험선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날 정도로 탐사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곳곳, 심해와 화산과 극지방과 열대 밀림 속에는 아직도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기한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연구가 쌓일수록, 인류의 지식 지평선도 넓어질 것이고, 우주에서 조우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깊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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