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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n 30. 2021

지열발전소와 지진

과학적 조사방법론이란 무엇인가

2008년 10월, 박사 유학 첫 학기 화공 열역학 1차 시험 문제 1번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담당 교수는 Jeff Tester 교수였는데, 이 양반이 쓴 극악 가독성을 자랑하는 열역학 교과서와 pset의 스타일에 따라, 1차 시험 문제 역시 story-telling 형식으로 출제되었다. 내 기억으로 세 시간짜리 시험에서 1번 문제의 지문을 해석하는 데에만 무려 30분을 소모할 정도의 극악의 문제였다. 문제의 플롯은 이랬던 것 같다. 


'너희는 MITI라는 가상의 엔지니어링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다. 그리고 현재 과테말라 (쓸데없는 과테말라의 디테일이 잔뜩 적혀 있음) 지열발전소 현장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다 (그 지역의 기후에 대한 디테일이 잔뜩 적혀 있음). 과테말라 화산군 지역 (대표적인 화산 몇 개가 나열되어 있음.. 역시 쓸데없는 정보) 지하 2km 지점에는 800C의 물이 사암 (쓸모없는 학명의 사암)에 갇혀 있고, 너희는 그 사암 지층까지 시추공을 뚫어, 물을 스팀으로 만들고 (뒤에 부록으로 steam table 첨가...), 그것을 끌어올려 지상의 터빈을 돌리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는데, 이건 뭐 한국에서 접하던 시험 문제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을뿐더러, 도대체 내가 왜 과테말라 지열발전소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는지 납득 조차 되지 않는 뭐 그런 심경으로 1번 문제를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한국의 시험 스타일로 시험공부를 하던 나는 뒤통수 맞은 듯 1차 시험을 장렬하게 망쳤다.


그래도 하나 건진 것이 있다면, 그 문제를 몇 번씩 곱씹으며 읽으면서,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지열발전소의 발전 원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충 땅의 열을 이용하여 뭐 스팀 좀 만들고 그걸로 터빈 좀 돌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의 이해였는데, 문제를 읽고 풀다 보니,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이 굉장히 만만치 않은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테말라나 아이슬란드 같이 화산 지대가 풍부한 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땅 파고 깊게 내려가면 뜨거운 지층이 나오고, 그 지층에 갇혀 있는 스팀만 뽑아내면 되는 것이니, 지열 발전은 꽤나 경제성이 있지만, 화산이 없는 나라에서는 그냥 자연적으로 땅속으로 들어 갈수록 올라가는 약간 뜨거운 정도의 온도에만 의존하여, 강제로 스팀을 만들어 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사암의 경우, 지층에 구멍이 슝슝 나 있으면, 그 구멍 안에 과열된 물이 갇혀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구멍을 내주면, 순간적으로 압력이 낮아져서 그 물은 순식간에 스팀으로 기화된다. 그리고 펌프를 돌려 그 스팀을 뽑아내고 터빈으로 유도하면 발전기가 돌아간다. 그런데, 온도와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고, 사암의 구멍이 작거나 적으면, 담수할 수 있는 물의 양도 적으므로, 생성되는 스팀의 양도 작아진다. 애초에 건조한 지층이었다면, 스팀을 만들기 위해 강제로 외부에서 물을 주입해야 한다. 이를 fraking 공정이라고도 한다. (셰일 가스 채굴에서 쓰이는 fraking 공법과 원리는 같다) 당연히, 발전량과 스팀량은 비례하므로,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주입하는 물의 양도 늘려야 한다.


지난 3월 20일에는 2017년 진도 5.4짜리 포항 지진을 촉발시킨 원인이 진앙지 근처에 있던 지열발전소의 대량 물주입 혹은 배수 때문이었다는 정부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었다. 1) 합동조사단의 발표 이전에도, 이미 2018년 6월, 부산대 김광희 교수와 고려대 이진한 교수의 논문, 스위스 ETH 지진연구소 Grigoli 등이 저술한 논문 두 편이 Science 지에 백투백 2),3)으로 출판되었는데, 두 논문 모두, 2017년의 포항 지진의 주원인이 자연적인 지질 활동이 아닌, 인위적인 활동 (anthropogenically induced earthquake)에 의한 것일 가능이 매우 높음을 다양한 증거를 조합하여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역시, 포항 지열발전소의 대량의 물주입/배수 작업이 포항 지진을 촉발시켰음이 거의 확실함을 보여 주었다. 

1) https://www.yna.co.kr/view/AKR20190320093351017...

2)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1007

3)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92/1003


포항 지열발전소는 앞서 예를 든 과테말라의 지열발전소보다 조금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의 지열발전소는 화산지대의 고열을 이용하므로, 시추를 그렇게 깊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스팀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고온 환경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포항 같이 화산 지대가 아닌 지역에서는 더 깊게 파 내려가야 어느 정도의 고온 (그래 봐야 150-180C 내외)을 얻을 수 있는데, 포항 발전소의 경우 시추공의 깊이가 무려 4.3 km에 달한다. 이렇게 깊은 시추공을 필요로 하는 지열 발전은 따로 심부지열발전 (Enhanced Geothermal System, EGS)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부로 시추해야 하기 때문에, EGS는 고도의 시추 기술과 집중된 자본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비교적 최근에야 많이 시도되고 있는 지열발전 기술이다 (실제로 한국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EGS를 건설했을 정도..). 특히, 시추공의 깊이가 깊고, 다량의 물을 한꺼번에 주입하거나 스팀을 뽑아내는 작업 때문에, fraking 과정에서 스팀이 갇힌 지층을 건드리거나 구멍을 낼 경우, 진도 3 이상의 지진이 '인공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이 보고 되면서, 아직은 화력발전소 등을 대체할 정도로 실용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 한 기술이다. 실제로, 2006년 스위스 바젤 지역과 2013년 갈렌 지역에서도 EGS로 인해 각각 진도 3.4, 3.6의 인공 지진이 발생하였음이 보고되었는데 4), 둘 다 EGS의 시추공 깊이가 4 km에 달하였음을 고려할 때, 포항 지열발전소의 경우와 매우 유사한 사례였음을 알 수 있다. 

4) https://www.yna.co.kr/view/AKR20130723176500088


다만 여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3.5 내외의 인공지진 (물론 진도 3.5도 인간이 충분히 느낄 만한 지진이긴 하다..)이 아닌, 진도 5.4 수준의 지진까지도 순전히 EGS의 fraking 공정에서 유발될 수 있느냐 여부다. 진도 3.5와 5.4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리히터 규모 (M) 혹은 MMI 규모를 기준으로, 지진 에너지 척도 (E)는 LogE = constant + 1.5*M의 로그함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i.e., M이 1 커질 때 에너지는 31.6배 증가), 진도 5.4의 지진은 진도 3.5의 지진보다 무려 708배나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인한 재산 피해는 3천억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인명 피해 역시 부상자 백 명 이상, 이재민 천 명 이상을 유발했을 정도로 포항 지진은 우리나라 지질 관측 역사를 통틀어서도, 역대급으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전에 보고되었던 스위스의 진도 3.5의 인공지진보다, 무려 1,000배 가까운 파괴적 에너지를 보였던 포항 지진이기 때문에, 이 지진이 오로지 EGS의 fraking 공정에 의해 '직접적으로'  유발되었다고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다만, EGS의 물 대량 주입/배수 작업이,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던 주변 지층의 안정성을 깨뜨리는 일종의 '기폭제'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확하지 않을까 한다. EGS의 물 주입 작업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필 물을 대량으로 주입한 지층이 응력이 많이 응축된 지층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원래 1만큼의 에너지를 만들만한 작용이, 1,000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마치 작은 도미노 하나가 천 개의 도미노를 다 넘어뜨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EGS에게 1,000에 대한 피해가 아닌 1만큼의 피해에 대한 책임만 지라는 식으로, 포항 지진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대부분 회피할 수 있는 면죄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미 2006년, 2013년 스위스의 진도 3.5 내외의 인공지진 사례를 충분히 인지 했을만한 시간이나 데이터가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내 지식만으로는 판단하기 불확실하다. 다만, 컨설팅 과정에 스위스 엔지니어가 참여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EGS를 건설하는 지역 하부에 불안정한 지층이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것이 주 책임 사유일 것이다. 물론 지층 건설에 대한 의무 조항이 없었으므로, 그것이 불법은 아니나, 공학 시스템은 불법을 회피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안정성과 기능성을 보장하는 관점에서 지어지는 것임을 상기할 때, 책임 방기에 가까운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원전 건설을 할 때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지진에 대비하여 원전 건설지 주변에 활성 단층이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데, 지열 발전은 발전소의 melt-down이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 지층에 대한 조사를 아마도 소홀히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사업의 참여자와 기획 관계자들은 발전소 자체의 붕괴보다, 물 대량 주입으로 인한 지층의 불안정성 촉발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데이터가 없었다면, 지층 변화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라고 했어야 한다. 건축으로 비유하자면, 애초 품질이 무척 나빴던 시멘트를 고의든 부주의든 대량으로 구매하여 건물을 짓고 있는데, 또 짓는 과정에서 철근을 덜 사용하여, 결국 그 건물이 붕괴된 격이나 마찬가지다. 건물의 붕괴 원인은 애초 나쁜 품질의 시멘트 사용뿐만 아니라, 철근을 덜 사용한 것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EGS에 1,000만큼의 피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 씌우는 것도 과연 합리적인 판단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신중한 중립적 조사 결과, 포항 지열발전소의 하부 지층이 꽤나 안정적인 지층이라고 결론이 난 후, 여러 기관의 승인을 받아 EGS를 건설하여 운영하다가, 대량의 물 주입으로 인해 3.5짜리 인공 지진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하부 지층에 지금까지의 분석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불안정한 단층이 숨어 있어서, 그로 인해 큰 지진이 촉발되었다면, 과연 EGS와 지층 조사 기관, 설립 허가 기관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2008년에 있었던 사망자만 69,000명 이상에 이르렀던 큰 피해를 입힌 중국의 쓰촨 대지진 역시, 그 지진이 그냥 자연재해만은 아니고, 근처의 삼협댐의 어마어마한 담수량으로 인한 주변 지층 불안정화가 촉발한 지진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과연 삼협댐으로 인해 실제로 증폭된 지진의 강도는 얼마로 추산해야 하는가? 나아가, 지진을 비롯하여 보다 넓은 범위의 재해에 대해서, 인위적인 활동이 주원인인 재해가 꽤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상황에서 5), 지금까지 있었던 자연재해 중, 과연 인위적인 활동의 영향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촉발되거나 유발된 재해가 얼마나 있을지 우리는 자신 있게 정량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이 입은 피해는, 단순히 생각한다면, 지구 온난화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주요 온실 가스인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에 비례하여, 각국이 1/n 하여 보상해야 하는가? 매년 발생하는 태풍 중 몇 개나 '인위적' 지구온난화에 의한 것으로 추산해야 하는가? 혹은 태풍의 에너지 증폭 비율을 얼마큼으로 추산해야 하는가?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과연 얼마나 인위적 토목 공사로 인한 것으로 추산해야 하는가?

5) https://www.newscientist.com/.../dn14425-five-ways-to.../


사실 자연재해는 작게는 지역 단위, 크게는 지구 단위의 dynamic process 이므로, 굉장히 다양한 변수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비선형 문제고, 또한 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동적인 문제라서, 데이터 갱신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변수 중에는 당연히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변수와 그것의 시간에 따른 변화도 포함되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변수에 대한 가중치, 시간에 따른 변화율에 대한 계수를 어떻게 정하느냐이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원론적으로는, 그에 대한 데이터를 더 많이 모아서 수학적, 통계적 모델을 만들고, 모델 검증을 위해 더 다양한 시나리오의 시뮬레이션을 수천-수만 번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과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EGS의 원리를 가능케 한 과학을 인위적 자연재해 (인위적 자연재해라고 하니가 굉장히 자기모순 같다)의 주원인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EGS가 촉발한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으로 인정하는 방법으로도 인정해야 함이 마땅하다. 애초 이번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 방식 역시 철저하게 데이터 위주로 합리적 가설 및 실험적 관측적 증거 조합에 의한 결론 도출 같은 전형적인 과학적 방법에 의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만든 공학 시스템은 원래 한 번에 성공하거나 영원히 고장이 나지 않는 법이 없고, 실패하거나 붕괴할 경우 그 부작용과 피해 역시 막심한 수준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 개발 자체를 버려 버리고 공학에 대한 신뢰를 모두 거둬 버린다면, 시스템의 개선과 혁신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사고, 어떤 재해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과학과 공학에 대한 신뢰다. 과학적 관점과 방법론에 입각하여 시스템의 실패를 냉정하게 반성하고 리뷰하되, 시스템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그로부터 혁신의 맹아를 추출하고, 다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견지하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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