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어떤 일을 하던간에 '시키는 것만' 할 수도 있고 '자기주도적으로 발전적인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도소 의사란 위치, 그리고 모든 공무원이라는 위치가 다 그렇습니다.
순천교도소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새롭게 시도했던 것들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발전해서 보다 나은 교정의료가 현장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첫째, 수용자들이 먹는 약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1500명의 수용자 중 1000명에 달하는 수용자들이 어떤 종류의 약이든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료한 수용생활 중에 마치 사탕 먹듯이 약을 먹는 수용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감기와 같이 약이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증상완화만 시켜주는 경우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필요없다는 것을 방마다 다니면서 교육했습니다.
허리통증과 목통증에 대해서는 저희 학교 정선근 교수님 쓰신 백년허리, 백년목에서 운동법을 복사해 나눠주었습니다. 허리통증과 목통증은 약으로 조절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주변에 지탱해주는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말해주었습니다.
약은 한달씩 장기처방하기보단 가능하면 5일씩 끊어서 남용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둘째, 수용자들이 B형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실, 아직 못 했습니다. 수요조사까지 다 끝났는데 백신 회사 측에서 물량확보가 안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같이 일하는 교도관 분들의 의지입니다. 순천 교도소에서 B형 백신을 맞춘다고 하니까 다른 교도소에서 일종의 협박전화까지 왔다고 합니다. 왜 귀찮은 일을 만드냐고. 하지만 해야 되는 것은 해야 되는 겁니다. 안 그래도 마약 등으로 B형 간염에 취약한 이들이 사회에 돌아가서 B형 간염의 보균자 역할을 하지 않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셋째, 장기기증 캠페인을 했습니다.
교육받은 재소자의 10% 정도가 장기기증서약을 했습니다. 기쁜일입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아직 뇌사자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편협합니다. 특히 '사후각막기증'과 '뇌사자 장기이식'은 의학적으로 사망후에 이루어지는 일인데, 사람들이 이 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의 신념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얘기해보면 "죽은 뒤 사체훼손이 아니냐" 또는 "온전하게 뭍여야지" 등과 같이 온갖 미신적인 얘기 뿐입니다.
더더군다나 기독교 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꺼려하는 것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미신을 따르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싶습니다.
사실 조혈모세포기증 캠페인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혈모세포기증의 경우 매칭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보안과가 데리고 2박 3일정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과장님이 반대하셨습니다. 수용자가 도주할 수 있는 상황은 안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지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밖에서는 기증자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백혈병 환자들이 많은데, 보안과의 귀찮음이 이 환자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단 말일까요?
넷째, 심리치료팀과 같이 일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심리치료팀과 의료과는 함께 움직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도 시스템적으로도 이 팀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실제 수용자 중에는 개인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혈압이 올라간다거나 다른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진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심리치료팀과 함께 움직일 때 훨씬 깊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의료과에서 심리치료팀에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용자를 보낼 수도 있구요.
하지만 2018년에는 일단 심리치료팀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가서 20분정도 발표하는 것에서 멈췄습니다.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함께 일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다섯 째,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초과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는 분명 공중보건의사들의 초과근무에 대해서 수당을 지급하도록 그 금액까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내에서는 이때까지 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정작 "시간외 근무" 수당을 주고자 하니 비현업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공중보건의의 경우 초과근무시간에서 무조건 한시간씩을 빼고 수당을 줘야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한시간씩 한달에 30번을 나와도 실제 근무시간은 0시간이라고 강력하게 교정본부에 항의했습니다. 결국 "시간외 근무에 대한 진료장려금"이란 이름으로 이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정당한 권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