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들은 그들만의 은어로 수용자들을 '도둑놈'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절도범도 아닌데, 왜 도둑놈이라고 부르는지 의아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피해자로부터 무엇인가 소중한 것-생명, 돈, 순결 등-을 '훔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둑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교도관들과 가장 많이 나오는 대화의 주제는 "수용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이다. 수용자들도 분명 인권을 가졌지만, 잘 해주면 잘 해줄수록 코를 꾀려 하거나, 오히려 그 호의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교도관들 사이 언어로 흔히 '데인 경험'이 몇번 있는 교도관들은 수용자들을 사람취급하면 안된다고 한다. 의료과에 근무할 경우 이 고민은 더 극심하다. 의료과는 기본적으로 수용자들을 '사람취급', '환자취급' 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이 교정시설에 있는 동안은 철저하게 지은 죄에 대해서 처벌받아야 된다는 '응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수용자에게는 정말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만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한다면 피해자의 억울함이 풀리고, 우리 사회는 보다 나은 곳이 되는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정설이다. 1975년에 쓰여진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도 응보주의가 지배하는 감옥이 결국은 재범율을 높이고, 수용자들을 교정교화시키는데 실패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교정교화를 위해 여러 시도들이 이루어졌고, 그것들 대부분은 수용자의 '재사회화'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수용자들의 범죄를 단순히 수용자들의 문제로 보고 일종의 치료대상으로 보는 것은 교정교화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노인범죄자들은 경범죄와 재범 비율이 높다. 먹고 살 방편이 없어, 그냥 조금씩 절도를 한다.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 교도소에서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것이 편해서 들어온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수용자를 더 선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에서 해결 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에게 적절한 일거리와 잠잘곳을 마련해주는 등의 방편을 통해 지역사회와 재통합시키고, 공동체가 '규범의 명확화'를 통해 갈등 상황을 조정할 때 이런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회복적 교정'의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 회복적 교정을 실현하는데 보건의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했다. (http://pha.or.kr/upload/pdf/pha-2-1-83.pdf)
"잘못했으니까 감옥에서 썪어!" 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우리사회가 수용자들을 결국, 우리 중 한명으로 돌아올 사람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감옥에서 교정교화의 기회를 주기보단 가둬만 두었다가 나가서 또 범죄를 저지르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교도소내에서 왜 간염을 치료해주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보내면 이들로 인한 간염의 전파가 결국은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되면 좋겠다.
말은 이렇게 해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 수용자들을 보면 응보주의적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론은 확실한데 현실세계는 역시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