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어지럼증과 변실금을 주소로 하는 환자였다. 신경학적 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외진을 나가 뇌 사진을 찍어야 된다는 생각에 과장님 진료를 보도록 했다.
과장님께서는 생체징후가 안정적이고, 의식이 생각보다 명료해 의사소통이 되므로 좀더 두고 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상태가 계속 악화되어 결국 2월 18일 외진을 나갔다. MRI상 크기 5cm의 뇌교모세포종(glioblastoma)이 숨뇌(medulla)를 침범한 것으로 보였다. 결국 형집행정지와 수술이라는 수순을 거치게 되었고, 이제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오늘 교도소로 이 수용자의 아들분이 찾아왔다. 그분은 교도소 내에서 아버지가 받았던 의료처우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교도소 내에서의 경과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그분의 언성은 점점 높아만 갔다. 애초에 그분은 나의 변명같은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얼마남지 않은 아버지를 앞에 두고 매주 아버지를 찾아뵈며 본인의 최선을 다했던 아들은 억울한 것이었다. 아무나 바로바로 외진을 시켜줄수 없고, 처음부터 암을 가장 가능성 높은 예상진단으로 놓을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말이다. 가장 화나는 것은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자신에게 교도소의 의료진이 한번도 설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누군가에게는 피눈물을 흘리게 한 수용자이지만, 결국 이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그리고 난 이들 1500명의 주치의인것이다. 1500명의 주치의가 되기엔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 벅차고 힘들다고 싶다. 특히 거짓과 과장이 난무하는 교도소 내에서는 그렇다 하고 싶다. 10년간 공부해서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민망한 박봉으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비슷한 명목으로 찾아와 언론에 제보하고 고소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항변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내게 기대되는 역할은 단순히 필요한 의학적 처우를 하는 의사 그 이상인 것이다. 환자가 내 가족인 것처럼 챙기며 환자 및 그 보호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하고 의사소통하는 것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의사의 역할이란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진상 환자,보호자를 대응하기 위해선 의사가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하지만 슬픔에 싸인 보호자의 하소연과 오기와 분노의 표출대상이 되는 것도 의사의 역할아닐까. 이런 돌이 수없이 떨어져도 미동하지 않는 깊고 넓은 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따뜻히 품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