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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은시인 Jul 25. 2019

남의 발을 씻긴다는 것

* 본 글에는 불쾌감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발을 씻기는 행위"라 하면 흔히 성경 속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따르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겸손함과 사랑이 새 계명에 담겼고, 이에 세족의식은 계명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Maundy" 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손님의 발을 씻기는 행위는 주로 샌달을 신고 생활하는 문화권에서 큰 환대의 표시였습니다. 아무리 깨끗하다 하더라도 남의 발을 만지는 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거부감을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아끼는 사람 아니면 해주지 않는 환대였을 것입니다.


발은 먼지 뭍고 지저분한 부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노력에 대한 경이를 불러일으키기는 신체부위입니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평생 평균적으로 지구 4바퀴를 돕니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의 발을 보면 그들의 멋진 경기력이 어느순간 갑자기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사와 육아로 굳은 살 배긴 어머니의 발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교정시설에서는 유독 수용자들의 발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의대 시절 실습을 돌면서는 정작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좀, 내성발톱, 통풍"이 교정시설에서 너무나 흔하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죽는 병"은 아닙니다. 하지만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이런 병들을 돌보다 보면, 일차의료가 가지는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수용자들의 발에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쉽게 드러납니다.


예전엔 통풍이 '부자들의 병'이라 했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들에 따르면 (직업 또는 수입으로 결정되는)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개인에게서 통풍이 자주 나타나고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합니다.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수용되지 않은 인구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여러 통계결과가 있기에, 이곳에서 통풍을 자주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Hayward RA et al., The association of gout with socioeconomic status in primary care: a cross-sectional observational study, Rheumatology, 2013

Bowen-Davies Z et al., Gout Severity, Socioeconomic Status, and Work Absence: A Cross-Sectional Study in Primary Care, Arthritis Care Res, 2018)


단체생활로 인해 무좀 또한 굉장히 흔합니다. 교도관 한분이 양말 위로 피가 비춰서 데리고 왔다는 여자수용자 한명의 발은 말문을 막히게 했습니다. 열 발톱 모두 무좀균에 감염되어 있었고 의사들은 onychogryphosis  또는 숫양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ram's horn 이라고도 부르는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발가락 뼈에 변형과 탈구가 되어있었고, 자라난 엄지발톱이 둘째발가락을 눌러, 둘째발가락에는 욕창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썩는 냄새 또한 심했습니다. 환자는 정신과적인 문제도 동반되어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결국, 7개의 발톱을 제거 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발톱은 뺀치를 잡고 덤벼들어도 쉽지가 않습니다. 욕창은 더러운 상처라서 보통은 꼬매지 않고 관리해주지만, 욕창의 상태, 환자의 정신상태 및 수용환경을 고려했을 때 봉합해 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해 봉합하고 항생제를 세게 사용했습니다. 발등 및 발바닥에도 번져 있던 무좀에는 연고를 열심히 발라주었습니다.

환자의 원래 발 상태와 처치 후 한달동안 열심히 드레싱을 시행한 결과가 아래 사진에 있습니다. 정말 다행히,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잘했다고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발톱을 처치하는 동안 수용자가 아파했다고, 마취도 안하고 발톱 뽑는 의사라고 소문난 것은 억울하긴 합니다. 다른 의무관 같았으면 그냥 외부진료로 빼버렸을 일을 붙잡고 해서 어찌보면 일을 만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놀랍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이것이 제가 수용자들에 대해 가지는 생각입니다. 다른 의무관들보다 엄격하게 향정약을 관리하고 수용자랑 싸우기도 많이하지만, 전 이들을 인간 취급하기에 그렇게 합니다. 인간 취급하고 싶기에 그렇게 합니다. 가망성 없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흔히 교정시설 은어로 "도둑놈"으로 본다면 그냥 나한테 편한 길만을 찾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수용자들의 발을 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것만 같은 수용자들의 발이,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조금은 다른 방향을 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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