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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은시인 Mar 02. 2020

코로나 단상 - 김천에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COVID-19, 일명 코로나로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아니 이제 시끄러움을 넘어 몇몇 곳은 지나친 정적이 흐릅니다. 교정시설도 코로나의 풍랑을 비껴가진 못했습니다. 김천소년교도소에 이틀전 새벽 3시 확진자가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김천소년교도소 의료과장님은 밀첩접촉자로 자가격리, 기존의 공중보건의사 선생님은 앞주에 대구 서구보건소로 파견을 가셨다가 그곳의 직원이 확진판정을 받아 마찬가지로 자가격리 중이신 상태라는 것입니다. 소에 의사가 한명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소는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저와, 여주교도소에 있던 공중보건의사 선생님이 의료 지원과 선별진료소 운영을 위해 급하게 김천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3월 7일부터 대구파견이 예정이었고, 여주교도소의 선생님은 원래 인천공항검역소 파견이 예정이셨는데, 김천으로 가달라는 말을 듣고 "반 명령, 반 자원"으로 이곳, 김천에 내려왔습니다. 50%의 자원은 저와 여주교도소 선생님 모두 이구동성으로 교정시설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설 자체라기 보단 그곳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레벨D방호복을 입고 확진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확진자는 마스크를 썼지만 레벨 D를 다 풀어헤치고 걸어나왔습니다. 문 앞에 음식을 먹은 흔적이 가득 싸여 있는데, 4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합니다. 산소포화도와 혈압, 맥박, 심지어 체온까지 다 정상인데 숨쉬는게 너무 힘들다고 주저 앉습니다. 다 죽어가니까 얼른 외부병원으로 내보내달라고 징징댑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진료를 1년 정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수용자의 특성입니다. 누군가는 환자가 징징댄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의사로서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 이 사람들을 욕하기 위해 징징댄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징징댐에는 귀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마누라 얼굴이라도 좀 보고 싶다고 하는 확진자의 징징거림은 가슴을 뜨끔하게 합니다.


수용자의 징징거림은 들어줘야 합니다. 때로는 어렵지만, 그리고 저는 정말 잘 못하지만, 확실한 건 그 짧은 순간이 마음을 고칩니다. 총무과장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나온 "이곳에 몸이 아픈 사람은 절반 밖에 안되고, 나머지 반은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수용자들을 위하는 것은 정신과 용어로 '역전이' 아니냐고 합니다. 김천소년교도소 코로나 확진 기사에는 범죄자들은 죽어도 싸다는 댓글이 달립니다. 저도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선 더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연구와 통계가 말합니다. 그리고 현실이 말합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어떠한지. 왜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수 있는지.


이렇게 오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김천소년교도소는 언젠가 꼭 한번 와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총무과장님 말대로 "아빠 엄마 찬스라곤 한번도 못 써본 아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소년수 수용인원이 많이 줄어들어 전체 김천소년교도소 수용자의 20% 밖에 안됩니다. 확진자도 성인입니다. 하지만, 이곳엔 어찌되었든 100여명의 소년수들이 있습니다.   


확진자와 같은 방을 썼던 2명의 수용자가 추가로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정말 최소한 소년수 중엔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정시설에 대해서 조금의 이해가 있는 의사로서 이곳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제주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위해 자리를 지키시는 공중보건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기서 잘해보고 싶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미국의사고시 중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미국에 있어야 되는 날이었습니다. 미국에 당장 갈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유있는 공중보건의사 기간에 시험을 보려고 한달 넘게 공부하였습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으로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 교정시설 의사의 한명으로, 더 나아가 의사의 한 명으로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100만원 가량의 손해를 보고 시험과 비행기표를 취소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도 전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도관인게 너무 좋다"라고 하시는 총무과장님 앞에서 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도 의사인게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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