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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은시인 May 23. 2020

문신- 너는 무엇?

교정시설에서 받은 신선한 시각적 충격은, 수용자들 옷 안에 있었다. "가슴에 뭐가 났어요" 라는 말에 "네 보여주세요" 라고 별 생각 없이 말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용과 호랑이에 속으로 크흡하고 심호흡하는 일이 초반엔 자주 있었다. 교정시설 의사생활 2년만에 지금은 오히려 문신이 없는 사람을 보면 어색하다. 문신을 보는 것은 하나의 미술작품을 보는 것과 같다. 심미적 즐거움도 있지만, 그 의미가 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수용자들과의 라뽀(rapport) 형성을 위해 문신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특히 딱 봐도 공을 많이 들인 문신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면 얼굴에 곧잘 미소를 띈다.   

 

문신 그 중에서도 크리미널 타투(criminal tattoo)는 내게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대상이었다. 한국 영화 목욕탕 장면에 단골로 등장하던 조폭들의 문신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 내가 그 조폭들의 문신 위로 드레싱을 하고,  문신이 틀어지지 않게 모양을 잘 맞춰 봉합(suture)을 하고 있다니 느낌이 묘하다. 문신에 대한 무엇보다 강렬한 기억은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다. 영화 속 니콜라이 역을 맡은 비고 모텐슨의 문신은 시선을 강탈했다.  <이스턴 프라미스>의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The Mark of Cain(2000)>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추방당하는 가인(Cain)은 몸에 표식을 남기게 되는데,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여기서 유래했다.  (창세기 4장 15절, "가인에게 표를 주사")


다큐멘터리는 러시아 감옥 내 타투 문화를 다룬 작품이다. 러시아 갱단과 범죄자들의 크리미널 타투는 범죄이력과 같은 여러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발목의 수갑문신은 수용자들이 자신의 발목을 그어버리던 베드로 시대에 대한 오마주, 가슴의 십자가는 모범이 될 만한 도둑이라는 의미, 세 개의 둥근 지붕 모양 교회는 3개의 다른 감옥을 의미하는 식이다.  러시아 수용소 감시관이었던 저자가 문신 3000여점에 담긴 스토리를 담은 <Russian Criminal Tattoo Encyclopedia> 과 같은 책은 러시아 크리미널 타투에 대한 훌륭한 집합본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문신 시장은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업계 추산에 따르면 전신에 하는 영구 문신 경험자는 300만 명, 국내에서 활동하는 비공식 ‘타투아티스트(tattoo artist·문신예술가)’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짧게 말해, 문신에 대한 관심도 크고, 문신을 한 사람도 많다. 문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과거 유럽 선원들이 부적의 의미로 새기던 <올드 스쿨>은 투박하고, 대부분 선이 두껍고, 약간 바랜듯한 색상을 가진 장르다. 이와 달리 화려하고 자유로운 도안의 문신은 <뉴 스쿨>이라 한다. 흔히 야쿠자들이 할 것 같은, 일본풍의 문신은 <이레즈미>라 한다. 일본어인 '이레루(넣다)+ 즈미/스미(먹물)' 이 합쳐진 말이다. 이레즈미의 세부 종류를 좀 더 알아보면 배경없이 봉황, 호랑이, 용과 같은 주제만 그리는 것을 "누키보리", 보통 배경이 되는 구름, 파도, 꽃 등을 "가쿠보리" 라 한다. 팔 다리를 9부까지 채우며 몸 전체에 새기는 것은 "소신보리(소우신보리)"라 한다. 교정시설에서 가장 많이 봤고, 밖에서도 가장 흔한 형태는 "히카에/에구리"로 가슴을 기준으로 팔을 채우는 양식을 뜻한다. 이 외에도 화려한 주술적 의미를 지니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이나 폴리네시아 쪽 문신에서 기인한 문신을  <트라이벌>이라 하고  (드웨인 존슨의 문신을 상상하면 된다.) 그림이 아닌 글자만 새겨 넣는 건 <레터링>, 인물의 초상화 같은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장르는 <리얼 / 포트레이트>라 한다.


그럼 한국의 수용자들의 문신도 이런 상징성을 띌까. 이들도 본인의 범죄이력을 기록하고 본인이 속한 조직을 문신으로 표시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은 내가 이에 대한 조사를 해보진 못하였고, 문신의 종류나 특징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 또한 거의 없다. 누군가가 (특히 교도관이!) <Russian Criminal Tattoo Encyclopedia> 저자처럼 한국판 크리미널 타투 모음집을 만든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만 할 뿐이다.  


의사로서, 수용자들의 문신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첫째, 한국에서 문신은 의료행위고, 문신을 통해 다양한 질환에 걸릴 수 있다라는 부분이다. 문신이 의료행위라는 것은 1992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다. 따라서 문신 시술은 가능하지만 의사한테서 문신을 받는 경우만 합법이다. 실제 의학적으로도 상처나 수술자국 등을 가리기 위해서 문신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오히려 문신이 음성화되고, 비전문적이고 비위생적 시술이 이루어져도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문신을 받은 뒤에 역으로 문신사들을 불법행위로 고발하겠다고 공갈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어떤 유튜버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면도기를 이용해서 문신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면도기에 바늘을 거치시키고, 모나미 볼펜의 잉크를 이용해 문신을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에는 교도소에서 받은 불법 문신 시술로 인해 감염이 발생한 무기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 감염으로 인해서 무기수는 신장이식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문신 시술은 확실히 피부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감염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내가 실질적으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문신 때문에 피부질환을 판별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문신 시술을 통해 B형이나 C형 간염에 감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는, 문신과 정신건강의 연관성이다. 문신자들과 범법 행위, 반사회적 인격장애와의 연관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문신을 한 수용자의 경우 공격 행동과 연관된 범죄 또는 폭력, 특수 절도 등 강력범이 보다 많았다는 보고들이 있다.  또한, 만 19세의 징병검사대상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문신자 집단이 비문신자 집단에 비해 교육수준이 낮고, 문신자 집단에서 부모사망, 이혼 별거 등이 많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런 연구들에서 지적하듯이 청소년들이나 젊은 층에서 문신이 단순히 새로운 문화나 자기내면과 개성의 표현 혹은 적극적인 정체성 추구 행동이 아니라, 자기 과시적인 전시적 심리에서 비롯되었거나, 우울, 불안, 분노 감정 등과 같은 정서적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충동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면 문신에 대해 조금은 다른, 조금은 더 깊은 고찰을 해봐야 되지 않나 싶다.


2004년부터 소년원에서는 무료로 문신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큰 호응을 얻었고, 사회복귀를 위한 긍정적인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개인의 개성 표현이라면 문신을 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만약 문신이 마음 속 상처와 혼란스런 정신병리의 표현이라면 그건 뭉크의 그림과 다름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 남궁호석, <한국의 문신 - 타투이스트가 전하는 타투 이야기>

- 이현기, 천영훈 외, 병무청 징병검사 수검자에서 문신과 정신병리와의 관계, Anxiety and Mood, 2014.  

- 배대균, 한국인 여성수형자와 일반여성간의 점상문신에 대한 비교연구, 신경정신의학, 1982

- 이정연 외, 수형자의 문신에 대한 임상적 고찰, 대한피부과학회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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