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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01. 2023

11. 짝퉁 몽블랑

     

오래전이었다. 지인이 중국 출장 다녀와서 내게 선물을 준 적이 있다. 몽블랑 볼펜이었다. 하지만 짝퉁. 얼핏 비슷했지만 포장도 내용물도 조잡한 짝퉁이었다.

     

난 그때 어렵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힘들던 시기였다. 그도 내 사정을 얼핏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는 눈이 있는데, 내가 그 정도도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내가 그런 짝퉁을 줘도 좋아할 사람으로 보였을까. 그때 난 웃으며 고맙다 말했지만 사실 슬펐다. 내 처지가 이러니 이 정도 대접을 받나 하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꼭 명품 짝퉁이 아니어도, 그냥 소주 한잔 사줘도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런 참담함도 들지 않았을 테고, 또 그 위로주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침에 문득 서랍을 열다가 ‘진품‘ 몽블랑을 오랜만에 꺼냈다. 하나는 볼펜, 하나는 만년필. 나름의 보복소비였는지, 그 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을 때 나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샀던 것들이다. 한동안 손글씨를 많이 썼지만 지금은 사용빈도도 낮다. 몽블랑에 대한 로망도 짝퉁에 대한 서운함도 이젠 없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짝퉁을 선물 받는다면 이젠 농담으로 웃어넘길 것 같다. 재미로 써보기도 할 테고.

     

사람은 속이 허할 때 더 외부치장에 몰두한다고 하나. 어쩌면 그때의 나 역시 필요 이상으로 이름값에 매달렸는지 모른다. 무엇 하나 내 맘대로 채워지지 않던 시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고. 굳이 상처받을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몽블랑, 이게 뭐라고.. 무심히 발견한 물건 하나가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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