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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13. 2019

10. 택시기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집을 못 찾으신다고, 주소가 어찌 되느냐는 전화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부리나케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수없이 전화를 드렸지만 아버지는 받지 않으셨다. 설마 택시기사에게 집 주소까지 알려줬는데, 집에는 들어가셨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결국 통화가 된 아버지는 당신이 계신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횡설수설하셨다. 동네를 여기저기 헤맨 끝에 아버지가 얼핏 언급하신 곳에 도착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 하지만 거기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차를 돌리려는 찰나, 길 건너편에서 낯익은 모자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흰색 페도라.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그 더운 날 혼자 뙤약볕에 서 계셨다. 전화하는 법을 잊어버리셨다며 힘없이 중얼거리셨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을 차려 드렸다. 그런데 갈 데가 있으시다며 다시 나가신다.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가신 곳은 은행. 함께 따라나섰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버지는 밖으로 나오시자마자 내게 봉투를 건네셨다. 사진값이라고 하신다. 얼마 전 한국에서 했던 내 전시회. 당신 건강이 이렇다 보니 못 가봐서 미안하다고, 작품 하나 사주고 싶다고. 아까도 돈을 찾으러 나가셨던 거였구나… 아버지는 어여 받으라며 힘없는 손을 흐느적거리셨다. 야위고 메말라 핏줄이 툭툭 불거진 손이었다. 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지금 이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아버지 건강이나 생각해 보시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리곤 아버지보다 두어 발자국 먼저 걸었다. 옆에서 걸으면 울컥 솟은 눈물을 들킬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안. 백미러를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힐끔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주름진 얼굴, 축 처진 눈두덩, 그리고 이제는 총기를 잃어버리신 눈. 한때 또렷하고 강렬했던 아버지의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하고 벗겨져버린 허물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형해화되고 있었다. 주책없는 눈물이 또 흘렀다. 다행히도 선글라스가 내 표정을 감췄다. 언제 저렇게 쭈그렁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셨는지… 그때 멍하니 차창 밖을 떠다니던 아버지의 눈빛이 백미러 안에서 나와 마주쳤다. 하지만 나를 보시는 것인지, 초점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눈물 훔치는 걸 알아차리셨을까. 아니면 그저, 낼모레면 다시 미국으로 떠날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셨던 것일까.

     

목구멍에서 뜨거운 말이 맴돌았다. 사랑한다고... 아버지, 사랑해요. 지금껏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부신 한낮의 햇살이 내 입을 닫아버렸고, 나의 용기 없음이 또 한 번 그 입을 틀어막았다. 이 순간이 훗날 얼마나 후회스러울지 알면서도, 입 밖으로 단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내 아들 녀석에게는 그렇게 뻔질나게 해대던 말이 왜 아버지 앞에서는 그리 어색하고 인색한지. 결국 나는 애먼 에어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안 추우세요?” 어느새 눈물은 선글라스 밑까지 흘러내리고 말았다.

     

차라리 미움을 갖게 하시지. 옛날 그 꼬장꼬장하신 성격 그대로 내보이시면 내가 좀 편할 텐데. 한때 아버지를 미워하게 했던 그 옹고집을 보이시면 돌아서는 내 마음이 덜 무거울 텐데. 절대 꺾일 것 같지 않던 분의 힘없는 뒷모습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실 이번만큼은 웃으며 떠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최대한 아버지를 위해 시간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역시, 그렇다고 쉽게 돌려지는 발걸음이 아니었다. 미국에 와서도 그 후유증은 한참 갈 것 같다. 언제쯤이면 가볍게 돌아설 수 있을까. 내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한, 그건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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