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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11. 2019

09. 슬픈 뉴스

     

30대 초반 엄마와 3살 된 딸.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내려왔다. 여행 갈 생각에 잔뜩 부풀어 그날따라 유치원에 찾아온 엄마가 더 반가웠던 아이.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쫑알거렸다. 그리고, 이 길이 아이와의 영원한 이별임을 아는 엄마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 세상 마지막 끼니인 컵라면과 우유를 먹고, 아이는 아직은 따뜻한 엄마의 손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11월의 차가운 제주 밤바다. 어떤 누구에게는 낭만으로 기억될 그곳이 이들 모녀에게는 한스러운 생의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이제 곧 끊어질 생명임을 알면서도 엄마는 아이가 추울까 이불로 꽁꽁 쟁여 안았다. 얼어 버릴 듯 차가운 검은 바다 앞에서, 포근한 이불에 쌓여 잠투정했을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니, 무엇이 그 모진 각오를 실행에 옮기게 했을까. 그리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이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얼마나 되뇌었을까.

     

우리 아이 세 살 때, 장난감을 사 달라며 우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적이 있다.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 싸구려 장난감 하나에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는 눈물을 훔치곤 했는데, 하물며 자신의 손으로 아이와의 연을 끊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 사연이 무엇이든 간에.

     

모녀의 뉴스는 하루 종일 나를 무겁게 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 더 감정이 이입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 가훈이 있다. ‘항상 생각하라. 내가 세상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매일 볼 수 있도록 침실로 올라가는 2층 계단에 걸어 뒀는데, 한동안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이 뉴스를 접하고 난 후 문득 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만들어낸 글귀이지만 새삼 그 의미를 하루 종일 고민했다. 내가,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어릴 적 나는 높은 곳, 화려한 곳을 꿈꿨다. 그런 세상을 동경했고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곳에 다가갔다 생각하면 환호했고 멀어졌다 느낄 때 좌절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시시해졌다. 내 시선의 방향은 밖이 아닌, 점차 내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진정 높은 곳은 세속적 기준이 아닌, 그 수치를 측정할 수 없는 가치에 있음을 믿게 되었다. 이 모두가 아이를 키우면서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는 가르침과 동시에 배움의 대상이다.

     

그런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그 세상은 제발 더 이상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분통 터지고 슬픈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더러운 진물들이 멈추기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하고 오만한 자들이 더 이상 활보할 수 없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미약하나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물론 쉽지 않다. 온갖 유혹에도 아직 약하다. 내 몸에 익숙한 습관조차 잘 바꾸지 못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깊은 중추 속에 자리한 세상의 달콤함들을 뿌리치겠다는 것인지, 내 스스로가 의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다짐이란 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날라야 하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반복의 연속 같은 것. 그래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야만 하는 숙명 같은 그런 것 말이다. 멈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끝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슬픈 뉴스가 아닌가 싶다. 감정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다. 이불에 쌓인 아이를 붙들고 차가운 바다를 황망히 바라보았을 그 젊은 엄마가 너무도 안쓰럽다. 내 안에 작은 다짐을 하나 했다. 2018년 11월의 뉴스를 보고, 나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던져 주기 위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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