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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18. 2023

이상한 나라의 제임스형


아바나 시내 베다도 Vedado에 위치한 민박집 까사 Casa에 도착했다. 외국인을 위한 민박집이니 만큼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이었다. 젊은 주인 남자가 유창한 영어로 나를 맞는다. 짐을 풀고 제임스형에게 전화했다.


예약할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민박집과 그 형의 집은 불과 두 블록 거리. 그 넓고 넓은 아바나 시내에서 말이다. 서울로 따지면, 강남이 활동 무대인 사람이 어떤 사람을 안 보려고 저 멀리 마포쯤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 집이 바로 옆골목인, 그런 상황이었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말이 실감 났다.


제임스형. 그냥 이렇게 부를 뿐 한국 이름은 모른다. 성이 김 씨라는 것 외에는. 물어본 적도 없다. 만약 있다면 김봉칠이나 김만복 같은 이름일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름에 숫자가 들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형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아니 불쾌했다. 그 형은 내가 가족과 첫 번째 쿠바 패키지여행을 갔을 때 우리 팀을 안내했던 투어가이드였다. 180센티 넘는 키에 덩치도 꽤 있는, 기본 체형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흔히 기대하는 싹싹한 투어가이드와는 정반대였다.


늘 좌측 5도가량 기울어져 있는 고개, 안경 너머로 치켜뜨는 둥그렇고 커다란 눈, 기울어진 상체를 지탱하기 위해 역시나 기울어진, 흔히 ‘짝다리’라 불리는 기우뚱한 하체, 그리고 모자를 벗으면 드러나는 빡빡머리. 어느 것 하나 '아 이 사람 인상 참 좋네'라고 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표정은 무언가 불만에 가득 찬, 속칭 늘 ‘티꺼운’ 표정이었다.


그 형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에서 여행업을 하고 있는 녀석인데, 내가 쿠바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내게 부탁 전화를 했었다. 쿠바에 가면 한국 음식을 너무도 그리워하는 가여운 영혼이 있는데, 갈 때 신라면 몇 봉지 던져주면 고맙겠다는 말이었다. 참고로 쿠바에는 수도 아바나조차 한국 식당이 없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잘 아는 나는 쿠바로 떠나기 전 와이프와 함께 엘에이 한국 마켓으로 갔다. 신라면은 물론이고 짜장라면, 삼분 카레, 삼분 짜장, 짬뽕 분말, 컵밥, 심지어 깻잎과 장조림 통조림 등등, 한 박스 싸 들고 쿠바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아바나에서 처음 만난 날 박스채 전해줬다. 그런데 그때 그의 반응이 놀라우리만큼 의외였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잠시 나를 ‘티꺼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그냥 휙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아닌가.


딱히 감사 인사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뭐라고 멘트 정도는 해야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서로 안면도 전혀 없는 사이에 베푼 친절이었는데. 하지만 여행 손님들이 처음 도착한 날이라 정신이 없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속도 깊지.


정작 나의 불만은 다음 날 일어났다. 총 열 명이었던 우리 여행팀이 점심을 위해 샌드위치 가게로 갔던 날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그 가게의 망고주스가 정말 맛있다며, 자기가 서비스로 사겠다며 생색을 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맛과 상관없이 자기가 사는 집 바로 옆에 있는 가게였다. 뭔가를 잊어버리고 나와 그거 가지러 집에 들른 거였다).


그는 일 인당 망고주스 하나씩을 카운트하면서 (사실 카운트할 것도 없었다. 총인원이 열 명이었으니 그냥 열 개 주문하면 되는 거였다), 우리 테이블은 두 개만 가져다줬다. 12살짜리 아들 녀석은 부모와 나눠먹으라는 뜻이었다. 난 사실 그가 주문하기 전에 아이가 망고주스를 좋아하니 3잔을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걸 묵살하고 두 잔만 갖다 준 것이었다. 저 망고주스 얼마나 한다고.


쿠바에서 망고는 길거리에서 저절로 알아서 자라는 과일이다. 우리나라 밤나무처럼, 쿠바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냥 길거리나 야산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사람들이 잘 따 가지도 않는다. 그런 망고주스를 다들 1인당 한 잔씩 주면서 정작 우리 가족 세 명이 앉은 테이블에만 2잔을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제 그렇게 바리바리 음식들을 무겁게 미국에서부터 싸 들고 왔는데, 선물에 대한 약발은커녕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대접도 못 받았다. 게다가 아이 먹는 것까지 차별을 하자 불만 게이지가 치솟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표출했던 것은 아니다. 다 큰 어른들이 망고주스 한잔 가지고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이후 다른 그럴듯한 명분을 노렸지만 결국 기회는 오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형’과는 결국 오해를 풀었다. 이후 나 혼자 다시 쿠바를 갔을 때였다. 서로 술도 주거니 받거니 어느 정도 친해진 뒤였다.  내가 그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너무 치사한 거 아니냐, 덩칫값 좀 해라 등등, 화만 안 냈지 할 말은 다 했었다.


그때도 그 ‘형’은 별말 없이 특유의 티꺼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런데 보름 뒤 내가 쿠바를 떠나기 전, 그 형은 같이 시내 마트에 가자고 했다. 나는 특별히 살 것도 없었지만 짐이라도 도와줄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그런데 마트에서 1리터짜리 망고주스, 단 한 통만을 사들고 나오더니 내게 건네는 거 아닌가. 아들 갖다 주라며. 그리고는 사실 자기는 그런 눈치를 전혀 몰랐었다고 그제야 얘기한다. 일부러 아들만 빼고 준 것은 아니라며 미안하다고, 역시나 그 티꺼운  썩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 형은 좋고 싫고 짜증 나고 행복하고, 그 모든 감정을 오로지 그 표정 하나로 다 표현한다는 것을. 그리고 역시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결국 그 형과 호형호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 형이 어떤 행동 어떤 표정을 짓던, 그냥 이해하게 됐다.


<수도 아바나의 과일가게>


미국 영주권자인 그 형은 가족이 엘에이 근처에 살고 있어 미국에 자주 들어왔다. 그럴 때나 아니면 내가 쿠바에 갈 때 우리는 자주 만났다. 알고 보니 의외로 철학전공자였다. 대화를 나눠보면 인상과 달리 아는 것도 많았다. 특히 쿠바의 사회체제에 대해 얘기할 때는 세상 진지했다. 역시 사람은 외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 형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 쿠바 여행에서는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그 형과 같이 있으면 생활면에서 더 편해지고 심리적으로도 외롭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혼자 완전한 고독을 곱씹으며 쿠바 전국을 여행하자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 형 집이랑 멀리 떨어지려고 외진 곳에 숙소를 잡는다고 잡았는데, 하필이면 그게 두 블록 거리였던 것이다. 그 형 동네가 그쪽인 줄 몰랐었다.


공항에서 내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짐을 풀자마자 형에게 전화했다. 제임스형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형 집 근처 맥주집으로 갔다. 고작 두 테이블이 있는 작은 야외포차 같은 곳이었다. 프라이드치킨이 있는 곳이란다. 아바나에서는 상한 육류도 대충 골라서 익혀 먹는데 프라이드치킨이라니.


사실 쿠바에서 닭이 신선하든 썩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튀기면 운동화도 맛있는 법. 게다가 양념까지 입힌다면 말이다.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닭튀김에 맥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지인이 있어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 참 간사하다.


몇 달 만에 만났음에도 ‘오 반갑네’라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눈 우리는 눈빛도 안 마주치고 치킨부터 뜯었다. 사실 배가 너무 고팠다. 그 형 역시 나보다는 치킨이 더 반가운 것 같았다. 그런데 손에 자꾸 기름이 묻어 먹는 속도가 안 붙는다. 슬쩍 제임스 형을 보니 역시나 쩝쩝거리는 입 주변으로 치킨 파편들이 그득하다. 먹을 때만큼은 집중력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다. 입 주변을 닦아가며 먹는 그런 산만한 스타일이 아니다.


여사장에게 냅킨을 달라고 했다. 대답이 없다. 조그만 가게에서 안 들렸을 리도 없는데. 다시 한번 손짓을 하며 냅킨 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갖다 준 냅킨. 치킨 뜯는 걸 멈추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루마리 휴지 딱 한 칸을 찢어, 아주 작은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온 것이었다. 간신히 코딱지 한번 후빌만한 크기였다.


그걸로 우선 손을 닦고 잠시 후에 또 냅킨을 달라고 하니 이번에도 역시나 한 칸을 가져다준다. 장난하자는 건가? 내가 웃으며 몇 개 더 달라고, 기름 묻은 손을 보이며 ‘좀 봐봐. 자꾸 손에 묻잖아’라는 시늉을 내며 말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놀랍게도, 안된단다... 아. 식당에서 냅킨 몇 장 더 달라는데 거절당한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돌아가 카운터에서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고 나서야, 난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두루마리 휴지를 한 칸씩 뜯어서 그걸 삼각형으로 두 번 접어 냅킨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만들어 놓은 냅킨들이 마치 종이학 접어 놓은 것처럼 수북했다.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아 그래, 여기 쿠바지…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있다가, 프라이드치킨에 맥주 끄적거리다 보니 내가 다시 쿠바에 돌아온 사실을 깜빡했다. 엘에이 코리아타운쯤 생각했던 것 같다. 더구나 처음 온 곳도 아니고 또 제임스형이랑 있다 보니 긴장감이 사라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정신 상태를 기름진 자본주의에서 쿠바식으로 세팅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


어쨌든 이제 적당히 배가 불렀고 우리는 더 이상 같이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나는 숙소에 돌아와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인터넷이 안되니 볼 게 없었다. 여전히 비행기 모드. 내일은 시내에 나가 인터넷 카드도 사고 유심칩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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