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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11. 2023

심야택시


호세마르티국제공항 앞은 서로 자기 택시를 타라며 호객하는 기사들로 늘 난리법석이다. 나는 민박집에 미리 예약을 부탁해 둔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시내로 향했다.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임에도 가로등 사정이 변변치 않아 도로가 마치 칠흑같이 어둡다. 그 사이로 간간이 흉물스러운 자동차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한국에서라면 애저녁에 폐차장의 이슬로 사라졌어야 할 차들이다.


꼴에 그 자동차들은 내가 탄 택시와 속도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면 택시 운전사는 마치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맹수가 사냥하듯 거칠게 운전한다. 가뜩이나 안전벨트도 없는 고물차인데 승객에 대한 배려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 그런데 이런 쿠바택시도 그나마 처음보다는 많이 적응된 편이다. 맨 처음 가족과 쿠바로 여행 와서 탔던 택시에 대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우리 가족은 일행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됐고, 그날 밤 처음 길거리 ‘삐끼’에 낚여 택시를 타게 됐다. 우리가 서있던 건물이 꽤 밝은 데다 그 앞에 ‘멀쩡하게 생긴’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어서 나는 삐끼의 요금 제안에 흔쾌히 응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는 그 멀쩡해 보이는 택시들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을 어두운 골목으로 데려갔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더 이상 가지 않겠다며 돌아서려는 찰나, 앞서가던 그가 골목에 주차된 작은 차 앞에 멈춘다. 그리고는 친절한 미소로 타라며 손짓을 한다. 나쁜 녀석 같아 보이지는 않아 서둘러 아내와 아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나는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이건 택시에 탔다기보다는 폐차장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차 안에 들어와 앉은 느낌이었다. 내가 앉은 조수석 의자 가죽은 다 벗겨져 안에 있는 싯누런 스펀지가 너덜너덜 나와 있었고, 여러 조절장치가 있어야 할 계기판은 속도계와 연료계 등 몇 개를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다. 그냥 구멍 난 것처럼 뚫려 있었다.


계기판 주변은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보일 만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고, 금속 재질로 된 부품들은 이미 녹이 슬대로 슬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안전벨트가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사치였다. 쿠바 풍경에 흔히 등장하는 삐까뻔쩍한 올드카들은 시내 관광중심지에, 그것도 쿠바사람들 한 달 치 월급 정도는 내야 탈 수가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출발한 택시. 좌석이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속도가 올라가자 나는 마치 스프링 달린 개 인형처럼 고개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가야만 했다. 좌석 양쪽을 꽉 쥔 채로. 그래도 그 와중에 에어컨이 작동한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런데 계속 달려도 이상하게 찬바람이 나오지 않고 뜨듯하기만 했다.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대시보드가 휑하니 뚫려있어 주행 중에 바깥바람이 그냥 실내까지 들어오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내렸을 때는 안에서 문 여는 손잡이조차 없어 운전사가 먼저 내려 조수석 옆으로 와서 열어줘야 했다. 그저 안 다치고 도착한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다시는 가족과는 이런 택시를 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던 밤이었다.


<흔히 만나는 쿠바 택시>


택시는 어느새 아바나 시내로 들어왔다. 가로등들은 수명이 다되어 오늘내일하듯 껌뻑껌뻑, 마지막 임무를 힘겹게 수행하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에 택시가 정차했다. 잠시 후 우리 옆에 다른 차 한 대가 섰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승객이 6명가량 앉을 수 있는 차인데 한국의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 보며 앉는 구조였다.


차 안에는 한창 흥이 오른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쿠바여자 3명이 타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신나게 노래 부르며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갑자기 그들이 환호하며 온갖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나 오늘 한가해요’ 포즈부터 시작해서 하트 날리는 포즈, 뽀뽀하는 포즈, 심지어 티셔츠를 살짝 내리고 가슴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그들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택시 기사가 저 차는 ‘콜렉티보 collectivo’라고, 쿠바 사람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합승 택시라고 한다.


이후 다른 신호에서 우리는 두 번이나 더 마주쳤고 그때마다 여자들은 경쟁하듯 내 카메라를 향해 온갖 민망한, 아니 고마운 포즈들을 취해줬다. “쟤들 어디 파티 갔다 오나 보네” 내가 택시 기사에게 말하자 그가 강한 스페니쉬 억양의 영어로 큰소리로 말한다. “술 안 먹어도 원래 우리 쿠바사람들은 잘 놀아! 따분하게 사는 것보다는 좋지 않아?”


사실 쿠바사람들이 그렇긴 하다. 정말 잘 논다.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춤을 추기도 한다. 원래 체질인지 아니면 사는 게 막막해서 그렇게라도 시름을 잊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떨 때 보면 온 나라사람들이 춤바람에 빠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 신호 대기에서 또다시 만나자 여자들은 더욱 큰소리로 떠들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그리고는 깔깔대며 한참을 자기들끼리 웃어댄다. “건너오라는 뜻이야?” 내가 택시 기사에게 묻자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나보고 “갈래?” 하고 되묻는다. 어느 새 여자들은 차에서 내려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택시기사는 그들을 향해 경적을 크게 울렸다.


그러자 그녀들은 손을 흔들며 금방이라도 뛰어 올 기세였다. “헤이 빨리 가자. 나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 사실 곧 도착할 민박집 근처에서 아는 형을 만나기로 했다. 쿠바에 사는, 분명 나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센데,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형이 하나 있다. 물론 한국사람이다. 택시기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출발했다. 여자들에게 손뽀뽀 날리는 것은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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