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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5. 2018

02. 대리기사가 왔다

        

대리기사가 왔다. 전화 목소리가 또렷하고 왠지 세련돼 보였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그는 외모 역시 깔끔한 인상. 차 안의 대화에서는 성실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그. 나름 사연이 궁금했지만 물어보긴 곤란했다. 하지만 그런 내 눈치를 알았는지, 먼저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낮에는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리기사 일을 한다고 한다. 주식하다 망한 지 7개월째 이런 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고. 낮에 하는 일이 어떤 분야냐고 물으니, 말하면 다 알만한 회사라며 대답을 피한다. 침묵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말을 이어간다. 아들만 둘이 있다고 한다. 7살과 5살.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이 혀끝까지 올라왔으나 그만뒀다. 평소에는 회사 근처에서 기숙하는데 돈 가져다줄 때만, 그러니까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집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다른 건 웬만큼 참겠는데 무엇보다 힘든 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은 거라고. 그저 자신의 죗값 치른다 생각하며 이 악물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시간이 새벽 1시를 넘겼다.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밥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져 그냥 참는다고 한다. 잠시 차 안에 정적이 흐른다. 나 이후에도 계속 일하냐고, 경쾌한 톤으로 물었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란다. 우리 아파트 어귀 감자탕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마다하는 걸 강권해서 함께 들어섰다.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그의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이 하고 싶을 때 일 것 같았다. 감자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그는 갑자기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조약돌 하나. 거기에는 삐뚤빼뚤 7살 아들이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아빠 사랑해 ♡’.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그가 꺼내보는 조약돌이라고 한다. 

       

눈앞이 흐려지려는 걸 참았다.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머쓱해진 분위기도 돌릴 겸 내 얘기를 꺼냈다. 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앞에 놓인 인생이 너무도 캄캄하던 시절. 당시 내 아기에게 해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선물은 6000원짜리 ‘빠방’이었다. 그 장난감 자동차는 아기의 만족도와 아빠의 경제적 능력이 일치했던 최적의 교차점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마저도 해줄 수 없을 때면 아이는 떼를 쓰며 울어댄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는 냉정한 대처가 필요한 순간이겠지만, 무능력한 아빠로서는 그저 눈물 그득한 아이 눈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보이기 싫었던, 어둡고 외롭던 시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자탕 집에서 일어나던 그가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비록 7개월이지만 대리기사 일을 하며 별의별 사람들을 다 봤다는 것. 막말은 기본에,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붓는 사람,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 심지어 때리려고 하는 사람 등등. 그러면서 덧붙인다. “감자탕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맛있게 밥을 먹어 본 게 얼마 만인지...” 

        

“세상 사는데 돈이 다가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 같아요”. 차로 함께 걸어가며 내가 말했다. 그는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우리 후배님은 꼭 재기할 거라 믿어요. 주제넘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재기하면 그땐 큰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길 바래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형식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길 내심 바랬었고, 그는 그런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줬다. 상황 좋아지면 다시 주식할 거냐 물으니 헛헛한 웃음을 짓는다. “그날이 올지 모르겠네요... 하루빨리 지금을 벗어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에게는 나중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여니 입김이 허옇게 뿜어 나온다. 서울이 또 영하권으로 떨어졌단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그에게 대리비를 건넸다. “참, 남는 돈은 집에 갈 때 애들 빠방 하나씩 사줘요" 그는 뛰어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난 기원했다. 가벼운 동정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그리고, 꼭 재기하기를. 출입구 비밀번호를 누르려다 잠시 벽에 기대어 섰다. 1월의 칼바람이 나를 한번 때리고는 지나간다. 흔한 격언 하나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던 어느 해 나의 겨울밤이 떠오른다 -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젠 모두가 자취를 감춰버린 골목, 얼어붙은 가로등이 파르르 떨고 있다. 내 어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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