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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6. 2018

03. 아는 만큼 보인다?

        

가끔 집 근처 미술관을 찾는다. 특히 노튼사이먼 미술관은 피카소, 고흐, 드가 등 그 이름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작품들이 꽤 있다. 아담한 크기에 늘 한산해서 천천히 둘러보기도 좋다.

        

그중 내가 즐겨 찾는 그림 중 하나는 Sam Francis의 작품. 고전주의나 인상파 그림들이라면 들은 풍월이라도 있는데 추상화는 솔직히 어렵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추상화가 좋아진다. 사실, 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동감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머리를 통한 논리적 이해와 가슴으로 성큼 들어오는 울림의 영역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식이란 녀석이 그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그림의 경우 작품 설명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날그날 그림이 다르게 다가온다.

        

내 기분이 좋은 날이면 그림 속 색채들은 마치 봄날의 향연처럼 춤을 춘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던 파릇한 시절의 설렘들이 떠오른다. 새 학기 엠티를 가던 청평 유원지, 라일락 향기 날리던 신입사원 시절의 서울역 거리, 사진 찍기에 재미 붙이던 5월의 창덕궁.

        

하지만 어떤 날은 이 그림이 그렇게도 슬퍼 보일 수 없다. 아래로 흘러 번지는 물감의 흔적은 마치 뚝뚝 떨어지는 눈물 같아 보인다. 번져버린 마스카라 자국 같기도 하고, 어느 비 오는 오후 슬펐던 창밖 풍경 같기도 하다. 또 어떨 때는 화려하면서 격정적인, 그래서 더 텅 비어있는 내 젊은 날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하고.

        

마침 누군가 그림 앞에 있다. 한참을 앉아 있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지친 다리를 쉬고 싶었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이 또한 그만의 감상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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