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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20. 2018

04. 한국에 다녀와서

        

한번 더 돌아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애써 저 멀리 시선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눈앞이 흐려졌다. 떠나는 자식과 손주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계셨을 어머니가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한번 터진 눈물은 큰길에서도 주책없이 흘러내렸다. 택시를 잡는 아내와 아이에게 들킬까 가로수 뒤로 얼굴을 숨겼다.

        

왜 쿨하게 헤어지지 못할까. 왜 남들처럼 웃으며 돌아서지 못할까. 짜증이 났다. 아버지 암 수술도 잘 끝났고, 게다가 초기라는데 꼭 이렇게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해야 하나. 이제 관리만 잘하시면 치료가 가능하다는데, 감사할 일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수술 이후 급속도로 쇠약해지셨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머니 또한 예민해지셨다. 별것 아닌 일로 다투고 억지 주장들을 펼치시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나조차 힘들게 했다. 항상 꼿꼿하시던 아버지는 더 이상 강하고 합리적인 분이 아니셨다. 암 판정 사실 자체로 아버지는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그 원인이 두려움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난 비위를 맞춰 드리지 못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저녁을 사드리던 자리였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하시던 아버지가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다. 안 가면 안 되겠냐고,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냐고... 그때 바라본 아버지의 축 처진 눈두덩과 힘 없는 두 눈빛. 사실 내게 의향을 묻기보다는, 이젠 당신 뜻대로 제어할 수 없는 다 커버린 자식을 향한 부탁이란 걸 안다. 아들에게 의지하고 싶으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난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가야 한다고.

        

그래, 그 말이 계속 귓전을 때린다. 작별 인사를 드릴 때도,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리고 미국 집에 도착해 짐을 풀면서도, 자꾸 아버지의 힘없던 그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럴 줄 알았다. 그 짧은 말이 마치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계속 나를 찌르리라는걸, 그리고 좀더 완곡하지 못하고 단호히 거절한 나 자신이 후회스러울거라는걸, 말하던 그 순간부터 이미 난 알고 있었다.

        

떠나오던 날, 어머니는 내게 작은 돈 봉투를 건네셨다. 오랜만에 왔는데 밥도 제대로 못해주고 신경만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가는 길에 맛난 거라도 사 먹으라며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그런 신파조의 이별 장면이 싫어 부리나케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하지만 택시 안, 차를 돌려달라고 하는 말이 몇 번이나 뜨거운 목구멍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제 가족과 인생을 이해해달라고, 다시 가서 따뜻하게 부모님을 안아드리며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해보지 못한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삼켜버렸다. 늘 그렇듯, 못다 한 한마디가 되어버렸다.

        

무겁디무거운 2017년 한국 방문의 끝자락, 공항에 도착해서까지 많은 비가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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