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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7. 2019

05. 나를 당황하게 하는 녀석

친구

          

친구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것도 빳빳한 백 불짜리 열개, 1000불. 집에 들어와 봉투를 열어보고 놀라 전화를 했다. "이거 뭐얌마." 녀석이 실실거린다. "야, 우리 나이에 용돈 받으니 기분 좋지 않냐. 카메라 장비 사는데 보태라."

        

녀석을 처음 만난 건 논산훈련소에서였다. 한창 혈기왕성한,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녀석들이 마음껏 마초적 본성을 뿜어내던 곳. 입대 전까지만 해도 얌전한 대학생이었을 녀석들이 육두문자는 물론 자신을 최대한 사고뭉치이자 카사노바로 포장하던 때, 소대장 훈련병을 맡은 내게 녀석들을 '통제'한다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동기들 중 유난히 눈에 띄던 한 녀석이 있었다. 왠지 까칠하고 냉소적인 말투가 그리 싫지 않았던.

        

녀석과는 같은 용산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카투사였던 우리는 가끔 부대 밖에 나가 김치찌개로 느끼한 내장을 씻어내곤 했다. 제대 후에도 녀석과의 만남은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집단의 친구들과 만나면 나누게 되는, 그 당시 대학생으로서 시대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의 꿈같은 '건전한' 대화는 우리 사이에 없었다. 노는 얘기, 여자 얘기,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비속어가 우리에겐 더 편했다.

        

그런 녀석의 눈물을 처음 본건 그로부터 아마 10년이 더 지나서였나, 어느 술집에서였다. 항공사에 취직했던 녀석은 드디어 기장이 되었다며 내게 무려 '양주'를 샀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댔다. 얼마를 마시고 떠들어 댔을까, 취해 보이는 녀석에게 나가자는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내 손을 끌어당긴다. 다 풀린 두 눈과 달리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녀석은 10년도 넘은 군대 얘기를 꺼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얘기였다. 아니, 기억에 남을 만큼 대단한 사건도 아니었다. 김치찌개를 같이 먹었던 어떤 날이었고, 난 단지 밥값을 계산했었던, 그런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김치찌개에 한이라도 맺힌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을 떨궜고, 처음으로 내게 속 깊은 아픔을 꺼내보였다.

        

많이 힘들 때였다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모두. 나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그날도 그랬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하필 지갑을 두고 나왔다는 거다. 남에게 아쉬운 얘기하길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척 난처했는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밥값을 내줬다고 했다. 녀석은 그때 내 말투까지 재연해 가며, 자기 자존심 상하지 않게 배려해 줬던 그 일이 너무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라도 당연히 그랬을 일을, 녀석은 10년도 넘게 담아두고 있었던 거였다.

        

“이런 븅신.." 신파조 분위기가 어색해 녀석의 어깨를 한대 후려갈겼다. 하지만 녀석은 웃지 않았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던 내 눈 역시 점점 흐려졌다. 한동안 우리는 수다 떠는 걸 잊어버렸다.

        

지금은 중국에 있는 녀석이 어제 들어왔다. 재작년 상해 출장 갔을 때 신천지에서의 모히또 회동 이후 2년 만이었다. 전날의 과음으로 몸은 오뉴월 파김치였지만, 녀석이 먹고 싶다던 강도다리횟집을 수배해서 간만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와인바 야외 자리로 2차를 옮긴 우리는 모처럼 '건전한' 대화를 나눴다. 살아가는 얘기, 가족 얘기, 그리고 서로의 꿈얘기.


어쩌다 내 옛날 얘기를 하게 되었다. 힘든 시절의 얘기였다. 한참을 듣고 있더니, 이번엔 녀석이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리곤 이내 서로 깔깔대며 웃었다. "야 시바, 우리도 이제 여성호르몬 나오나 보다 하하하."

        

전날 지은 죄 탓에 유독 마누라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아쉬워하는 녀석의 표정을 읽었지만 내겐 생존 문제가 절박했다. 녀석이 선물로 들고 온 중국 술을 손에 들고 택시를 잡았다. 뒷자리에 몸을 기대고 얼마 후, 녀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 나이 먹어가니 친구라는 단어의 느낌이 새삼 소중하다. 마누라에게 잘혀'. 그 녀석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기특한 문자였다.

        

23년이나 녀석을 만나왔지만 알았다기보다 '봐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녀석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조금.. 어쩌면, 사람을 안다는 것만큼 제일 큰 착각도 없는지 모르겠다. '너 나 알잖냐', '내가 걔를 잘 알지', '아직도 나를 몰라?'..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메커니즘의 산물인데, 그 짧은 만남 몇 번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더욱 세월과 함께 묵어가는 사람이 좋다. 여기저기, 천천히 발견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녀석과 나는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당황하게 할지 모른다. 단지 그런 당황스러움이 이렇게 기억하고 싶을 만큼, 흐뭇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돈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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