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 일부러 화자의 말 외면 하기
“사막에서 살아남기”라는 게임이 있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사원부터 중역까지 사람들을 직급별로 골고루 섞어 여러 팀을 만든다. 그리고선 문제를 내준다. 물, 담요, 총, 성냥, 거울, 냄비, 로프, 텐트, 손전등, 칼 등의 예시를 주고 사막에서 조난당했을 때 가장 필요한 물건을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기게 하는 것이다. 팀원끼리 토의할 수 있으며 제한시간은 10분이다. 정답은 익스트림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하여 얻은 모범답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저 즐기자고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 내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실험인 것이다. 실험을 위해 팀별로 가장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미리 정답을 알려 주고 게임 내내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게 한다. 그리고선 나중에 최종적으로 나온 그 팀의 답에 그 사원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대체로 열 개가 넘는 팀이 게임을 하더라도 정답을 맞춘 팀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직급이 낮은 사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답은 대체로 직급이 가장 높은 중역급 직원이 제시한 대로 나온다. 그들이 1위로 선택한 답은 거의가 성냥이나 텐트, 물이었다. 일반적으로 나옴직한 대답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익스트림 전문가들이 선택한 답은 거울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막에서 조난당했을 때 장기간 거기서 살면서 살아 남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일교차가 수십도에 달하는 사막에서 일반인이 오래 살기란 쉽지 않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거울로 빛을 반사하여 지나가는 비행기나 헬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거울이 뜻밖의 정답이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게임 중에 사원은 자신이 이미 이 문제를 어디선가 봤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음에도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의도된 지각 선택 외면인 것이다. 지각 방어이면서 억압인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 네가 무얼 알겠느냐는 식으로 그 의견을 무시하고 직급이 높은 이사님의 생각대로 정답을 이야기한 탓에 10개도 넘는 팀 중에 한 팀도 정답을 말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지각방어와 억압은 통상적으로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나쁜 경험에 대한 기억을 일부러 외면하려는 것을 넘어 조직 속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소통을 방해하고 일선 실무자의 의견이 상향식으로 윗선으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의사소통이란 화자의 뜻하는 바인 메시지가 청자에서 트여서 통하는 것이라 했다. 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메시지가 청자에게 전달되어 선택되어야 한다. 그리고선 청자의 머릿속 작업대 위에 올려진 후 청자의 인지적 기준에 의해 해석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세 가지 과정을 지각 삼단계인 지각선택, 지각조직, 지각해석이라고 한다. 의사소통은 이 삼단계가 모두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통 장소나 화자와 청자의 실수, 관습적 오류, 의도적 왜곡에 의해 선택, 조직, 해석의 각 단계마다 오류가 일어나 소통을 방해한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게임의 경우 중역이라는 직급을 가진 청자가 화자인 신입사원의 메시지를 선택조차 하지 않은 지각오류이다. 이러한 행위는 소통을 원천봉쇄한다. 특히 창의성, 환경 적응적 사업전략이 요구되는 현대 경영환경에서 집단지성의 발현을 막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 반대로 누구의 의견이든 억압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선택하게 되면 조직은 창의성이 풍부한 곳이 된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심이 짓는다는 카피로 아파트 광고의 트랜드를 바꾼 것은 인턴 사원의 아이디어였다고. 처음 한 아파트 건설회사로부터 광고 의뢰를 받고 맥주를 마시며 향후 광고 제작 방향에 대해 논의 하던 중 당시 인턴 사원이었던 젊은 사람이 ‘왜 아파트 광고에는 그리스 여신 같은 복장을 한 모델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모두 중세 유럽의 성 같은 곳에서 사는 모습으로 나오냐고.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실제로 집에서는 편하게 옷 입고 그러지 않는냐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팀장이었던 박웅현은 인턴 사원의 의견을 억압하지 않고 선택하였고 결과는 ‘진심이 짓는다’는 카피를 탄생하게 하였다. 이 광고로 해당 건설사는 업계 7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이 사례의 경우도 그저 남이 하는 이야기이니 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건설 업계 전체 트랜드가 화려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던 당시 트랜드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방향의 광고 전략을 택한다는 것은 대단히 실험적인 일이라 팀장이 부하직원, 특히 경험이 적은 인턴 사원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듯 의사소통을 할 때 우리는 고의로 또는 습관적으로 메시지의 선택, 조직, 해석의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 억압은 화자의 메시지를 청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은 양반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때 청자인 사람이 상대가 말하는 것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고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자기 말을 하거나 중간에 자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만약 소통 장소가 시끄러운 곳이거나 환경에 의해 지각선택을 방해 받았다면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면 된다. 하지만 의도적 억압은 쉽게 개선되기 힘든 습관이다. 혹시 나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또는 나보다 경험이 적고, 덜 배웠다고 해서 아니면 과거에 나와 대립한 적이 있다고 해서 상대의 메시지를 선택조차 하지 않은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정보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보를 넘어 그 사람도 떠나보냈을지도 모른다. 관성이란 말 그대로 습관적인 성질이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각오류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소통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범하는 오류는 없는지 주의하면서 고쳐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