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선택의 오류
어쩌면 소통은 노력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처음부터 소통하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에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 누군가와 소통이 되지 않았던 사례를 떠올려 보자. 대화를 이어 가면서 서로 반대되는 의견이 나왔을 때 나와 상대방이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장을 바꾼적이 있는가? 그랬다면 소통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통은 애초부터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관찰자 행위자 효과의 오류도 상대방의 잘못은 시야에 잘 들어오고 나의 잘못은 시야에 잘 들어오지 못하므로 인식 방법의 차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내 잘못은 인식하려 들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12angry men에서 4번 배심원은 확고한 자기 주장과 근거로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지만 자신이 납득할만한 근거가 나오자
“의심할만한 타당한 증거가 나왔소”
라고 말하며 의견을 유죄에서 무죄로 바꾼다. 하지만 그와 함께 끝까지 유죄를 주장하던 3번 배심원은 어떠한 타당한 증거에도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현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꿔 가며 주장을 지켜 나간다. 그가 범한 관찰자 행위자 효과의 오류를 찾아본다.
관찰자 행위자 효과의 오류
처음 12명의 배심원단 투표에서 유죄 11, 무죄 1이 나온후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유죄 3 무죄 9로 역전되는 상황에 이른다. 여덟명의 배심원이 자신의 의견을 바꾼데에는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의심 정황은
1.증인으로 출석한 아래층 사는 노인이 전철이 지나가는 상황에서도 “죽여 버릴거야”라고 말한 소년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2.다리를 절뚝이는 노인이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소년이 도망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3.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는 소년의 주장이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이 본 영화의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며칠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극도의 긴장과 공포상황에서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4.소년이 사용한 칼은 몹시도 특별한 생김새를 갖추어 그런 칼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 전당포에서 똑같은 칼이 발견됨에 따라 그것은 더 이상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없다.
5.아버지의 가슴에 난 상처로 보아 칼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향했을 것으로 보이나 어릴 때부터 잭나이프를 많이 써본 사람은 칼을 아래에서 위로 사용하는 습관이 있음을 볼 때 소년을 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11명중에 8명이 유죄에서 무죄로 돌아서고 나머지 3명도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 때 확고한 논리를 갖춘 4번 배심원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논의로 볼 때 충분히 의심 할만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믿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길 건너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는 여인의 주장이 너무나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잠을 자기위에 11시경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않아 1시간 넘게 뒤척이다 12시 10분경 몸을 창문쪽으로 돌렸고 그 때 불꺼진 전철이 지나갈 때 전철 창문 마지막 두칸을 통해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사건 후 급하게 불이 꺼졌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만은 목격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것을 믿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4번 배심원의 이와같은 주장에 배심원실은 침묵이 흐르고 무죄의 주장을 이끌던 8번 배심원의 표정도 어두워진다. 여기에 힘을 얻은 최후의 유죄 주장자로 남게되는 3번 배심원이 조금전에 무죄로 마음을 바꾸었던 12번 배심원에게 묻는다.
3번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2번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워낙 맞춰볼 증거가 많으니 복잡하네요”
3번 : “다른 증거는 다 버려요! 길건너 여인이 직접 봤다는데 더 뭐가 필요합니까?
이 상황은 3번 배심원이 12번 배심원을 관찰하는 입장이 되어에서 주장을 하는 경우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강력한 증거가 나오자 다른 증거를 고려하는 12번 배심원의 행위가 못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건은 의외의 상황으로 완전히 뒤 바뀐다. 추가적인 논의 과정에서 여인이 평소에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으로 밝혀진 것이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잠자리에 들 때 안경을 쓰고 있는 경우는 없으므로 여인이 목격했다는 순간에도 안경을 쓰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것이다. 이에 3번 배심원을 제외한 모든 배심원이 무죄로 입장을 바꾸고 3번 배심원은 최후의 의사결정을 요청받는다.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3번 : ”길 건너 여인의 목격말고 그럼, 다른 증거는 뭐란 말입니까? 칼은 또 어떻고요?“
2번 : ”아까 다른 증거는 모두 버리라면서요?“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의 주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타인이 여러 증거를 맞춰 보느라 고민할 때는 다른 증거는 버리라고 말하고, 자신이 강력하게 믿던 증거가 무용지물이 되자 다른 증거를 맞춰보자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관찰자행위자, 내로남불과 같은 것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객관적 증거를 수집하고 해석한다기 보다 오직 믿는 증거만을 수집하는 확증편향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억압 : 인위적 선택의 회피
영화속에 나오는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7번 배심원이다. 그는 처음부터 유무죄에는 관심이 없다. 8시부터 시작하는 양키스 야구경기를 보러 가야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만 나면 된다. 첫 투표에서 11대 1로 유죄가 우세한 가운데 무죄를 주장한 8번 배심원이 몹시 못마땅하다. 그만 아니었더라도 벌써 토론은 끝났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때 1차 토론후 8번 배심원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그는 자신은 기권을 할테니 비밀투표로 두 번째 투표를 실시하여 열 한명이 또다시 모두 유죄라면 유죄 평결을 들고 가고 한 명이라도 무죄가 나온다면 계속 토론을 이어가자고 말한다. 이 말에 7번 배심원은 내심 신이 나서 빨리 하자고 재촉한다. 결과는 한 명이 무죄로 돌아선 것으로 나온다. 누가 마음을 바꿨는지 배심원실은 술렁이고 예상치 못한 9번 배심원이 자신이 바꿨다고 말하며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때 7번 배심원은 듣고 싶지 않다며 화장실로 가버린다. 이에 8번 배심원은 이렇게 말한다.
”들리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듣지 않을 거고요“
억압에 의한 인지위적 지각선택의 회피다. 100분 토론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내 주장을 꺾는 경우를 본적이 있는가? 소통을 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적인 제도라기 보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취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