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 버린 시간’에서 현대인은 손안의 컴퓨터가 된 스마트폰으로 인해 혼자 있을 기회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문자 정보와 영상을 접할 수 있고 SNS로 타인의 삶을 엿보기도 하며 심지어 오늘 처음 알게 된 사람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문자 정보와 영상은 취향에 따라 골라 볼 수 있고 사람조차도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 특별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따르지 않는다. 낯선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아도 뭐라고 하는 법이 없고 답변을 늦게 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보와 사람이 필요하면 내 마음대로, 필요 없어져도 내 마음대로 취하거나 버릴 수 있다.
대신 벗어날 수 없는 연결에 빠져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 설령 책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도 연결의 중독성이 그렇게 하게 두지 않는다. 가상공간에는 수많은 정보와 영상이 있지만 종이책을 읽을 때와 같은 멈춤과 사색을 주지는 못한다. SNS에 있는 친구들의 삶을 엿보지만,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을 보고는 박탈감을, 인생 푸념만 하는 사람을 보고는 안도감을 느끼는데 그친다. 이 모든 행위는 그 어느 것도 나를 마주하는 기회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를 뜻하는 한자 스스로 자(自)는 코의 모양은 본뜬 상형문자다. 사람을 대표하는 신체가 얼굴이며 그중 거울을 보지 않은 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얼굴 기관이 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을 뜻하는 코가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처럼 자신을 반만 알고 반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반을 보는 시간을 사색이라 부른다. 오롯이 혼자 마주해도 알 듯 말 듯 한 것이 자신인데 현대인은 자기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
혼자 있어 외로운 기분을 고독이라 한다. 인간은 고독할 때 나머지 절반의 자신을 볼 수 있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자가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에도 지금 우리는 외로움을 견딜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잃어버린 고독을 찾고 절반의 나를 보기 위해, 나를 혼자 있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뎠을 때 함께 있어도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