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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Mar 21. 2020

노자를 닮은 철학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니체는 이렇게 적는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마음껏 경멸하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마음껏 숭배하는 자이며 저편 물가를 향해 날아가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과 희생의 근거를 별들의 너머에서 구하지 않고 언젠가는 대지가 초인의 것이 되도록 대지를 위해 희생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인식하기 위해 살며 언젠가는 초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식하려는 자를. 이러한 자는 몰락하려고 한다.”  

  

니체가 살아 돌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의 생각을 문장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니체를 해석한 많은 글이 있지만 그 또한 그들의 생각일 뿐. 결국 내가 아는 만큼 읽어 낼 수밖에 없다. 내가 읽기로 니체는 본질주의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의 진리는 고정된 개념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인간은 진리를 찾으려 하지만 그 진리는 찾는 순간 더 이상 진리가 아닌 것이 되며 새로운 과제를 부여 받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움으로 가려는 자, 그가 초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다’  

  

이것이 니체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니체의 글을 읽으며 한 가지 떨칠 수 없었던 생각은 ‘혹시 이 사람이 노자의 책 도덕경을 읽었던가?’ 였다. 도덕경과 유사한 문장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노자는 그의 책 도덕경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도덕경1장) 

자기를 앞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한다.(도덕경7장) 

고난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 내 몸이 있기에 고난도 있다.(도덕경13장)    

니체는 인간이 건너가는 존재이지만 이쪽도 저쪽도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몰락시키는 사람만이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노자가 말한 정해진 도란 없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할 때 자연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니체와 노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는 상제보다 먼저 있었다” -도덕경-    


니체와 노자야말로 초인이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기준을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보려 했다. 자신을 몰락시키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몰락하지 않는 자는 타의에 의해 몰락한다. 혁신이 변방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중심에 있는 자는 자신을 몰락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혁신을 통해 중심이 된 자 역시 혁신을 완수하는 순간 또 다른 혁신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니체가 초인을 건너가는 자라고 말한 이유다.     

내가 죽여야 할 신은 무엇일까? 나를 죽이러 오는 자는 지금 변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내가 사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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