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두 딸이 작년부터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고 난리를 부렸다. 유튜브로 햄스터 키우는 영상을 보고 블로그와 검색을 통해 햄스터의 생태를 조사해 글을 썼다. 사서삼경이 아니라 햄경이다.
“아빠 책 많이 팔면 사주께”하고 버티기를 1년, 그렇지 않아도 두 달이나 되는 겨울방학에 코로나 때문에 5주나 개학이 늦어져 녀석들도 한계에 이른 모양이다. 내가 마음이 약하기는 해도 그렇게 쉬운 사람은 아닌지라, 사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고 있는지나 보자하고 마트로 갔다.
애완동물과 용품들을 파는 곳으로 가자 작은 토끼도 있고 햄스터도 있다. 몇 마리 없는가 싶더니 판매직원이 코코넛 은신처를 뒤집으니 방금 새끼를 낳았는지 바글바글하다. 흡사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생쥐 새끼들 같기도 했지만, 내가 봐도 귀엽다. 문제는 사느냐 안 사느냐에서 몇 마리 살 것인가로 바뀌었다. 나도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고민할 틈도 없었고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수컷이냐 암컷이냐, 암수 각 한 마리냐, 황금색으로 할 것인가 갈색으로 할 것인가 줄무늬가 있는 게 낫나, 두 마리를 같은 집에 키워도 되는가, 암수를 같이 키우면 나중에 새끼 낳으면 어떻게 하느냐로 질문은 확대된다. 판매 직원은 한술 더 떠 새끼 낳으면 분양하든지 여의치 않으면 마트로 가져 오란다.
푸딩, 암수 각 한 마리, 그렇게 햄스터는 집으로 왔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지어져 있었다. 망고와 딸기. (딸기는 이틀 만에 호두로 개명했다)
‘햄스터도 생명이야, 생명’ 하는 듯 살림살이가 많다. 리빙박스에 굵은 톱밥 깔아주고 침실에 욕실과 화장실은 별도다. 화장실과 욕실에 고운 모래는 필수. 급수대도 있어야 하고 먹이통은 기본이고 비만 관리를 위해 쳇바퀴도 필요하다. 설치류의 설자가 깎는다는 뜻인 것도 처음 알았다. 이빨을 깎는 동물. 엄청 갉아 댄다. 며칠 생태를 관찰하니 야행성인 만큼 아침부터 밤까지는 주무시고 밤 10시부터 슬슬 활동을 시작한다. 나도 12시에는 자러 들어가므로 녀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은 방에서 먼저 자고 나는 거실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자는 편이다. 햄스터도 거실에 있다. 야행성이라도 거실에 불을 켜두는 것은 햄스터 생태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아이들이 들어가면 불을 끄고 있는다.
그날도 노트북 화면 빛만 기대어 몇자 써 보려고 앉았다. 졸필이지만 제법 많은 글을 썼음에도 쓸 때마다 하얀 워드 화면은 새롭다. 쓸 때마다 지난번에는 어떻게 썼나 싶을 정도로 막막함으로 마주한다. 그날도 그러고 있었다. 그때 거실 구석에 갉는 소리가 들린다. 햄스터가 설치를 한다. ‘아 니들이 거기 있었지’ 하고서 가서 보니, 호두가 은신처를 갉아 댄다. 며칠새 정들었나. 갉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니 반갑다. 또한 이가 자라는 걸 막기 위해 갉는 것은 살겠다는 의지니 동병상련된다. 니가 살자고 갉는다면 나는 살자고 쓴다.
햄스터가 ‘여기 햄스터 있어요’ 하니 나도 대답한다. ‘나도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