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 강사 작가 Mar 21. 2020

글은 어떻게 쓰는가

손홍규 작가의 에세이 ‘풍경의 발견’을 읽고 글쓰는 방법에 대해 써본다.    


풍경의 발견, 손홍규    

폭설이 내리던 날 바닷가에 서 본 적이 있다. 속초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 처음 눈 내리는 바다를 보았다. 태생이 내륙인지라 바다를 접할 기회도 드물었지만 바다보다 산을 더 즐겨 찾았던 것도 한 이유인 듯하다. 그런 내게 눈 내리는 바다라니. 풍경은 낯설었지만 나는 순식간에 그 풍경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때까지 내게 눈이란 쌓이는 것이었다. 더러운 곳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내려앉아 한 겹 한 겹 쌓여 그것도 무척이나 가볍게 쌓여 짓누르는 게 아니라 감싸안아준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바다로 쏟아지는 눈은 쌓이지 않았다. 바다에 내려앉는 순간 눈은 바다에 스며들어갔다. 그 풍경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와 비슷한 풍경을 전혀 모르고 살지는 않았다. 아마도 한강을 건너면서 강으로 곤두박질하는 눈들을 본 적도 있을 테고 고요한 저수지 위로 내리는 눈들을 만난 적도 있을 테다. 하지만 바다는 달랐다. 바다는 대지 너머의 새로운 대지였고 그 대지에 내리는 눈 역시 새로운 눈이었다. 그때의 바다와 눈은 내가 알던 바다와 눈이 아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전히 내가 알던 바다와 눈이었다. 그러니까 존재의 형식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어떤 이치를 문득 깨달은 듯한 기분이었다. 눈 내리는 바다는 늘 해맑게 웃던 이가 어느 날 속 깊은 울음을 터뜨렸을 때처럼, 타인의 내면을 무심코 목격했을 때처럼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당황스러움이 삶을 구성하는 찬란한 순간들임을 알았다.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되던 속수무책의 순간들을 겪듯 매순간 당황하고 당황하며 견뎌내야 하는 게 삶이라면 그 삶 가운데 비장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것도.    


글은 어떻게 쓰는가. 

글은 무엇을 쓰는가.     

결국 글이란 자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질문은 언제 던지는가? 모든 것은 감각에서 시작한다.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오늘 창밖의 풍경이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면 감각이 자극된 것이다. 바다에 눈이 쌓이지 않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면 감각이 자극된 것이다. 이 순간이 씨앗 소재다. 글을 쓸 동기다. 포착했다면 질문한다. 이 평범한 풍경이 오늘 왜 낯설게 다가오는가? 이 낯섦은 무슨 의미인가?     

이 감각과 질문 그리고 답을 쓰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다. ‘풍경의 발견’에서 작가는 눈내리는 바다를 보고 감각이 자극되었다. 그리고 질문한다. 이 풍경이 왜 새롭지? 내가 바다에 눈 내리는 풍경을 처음보나? 강과 저수지에 눈 내리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않나. 오늘 유독 새로운 느낌은 왜인가? 결국 이 새로움은 무슨 의미인가? 단지 나에게 처음 일뿐 바다에 눈이 내리는 풍경은 늘 있었다. 이것도 바다 존재양식의 한부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내가 모르는 순간이 있다. 다들 그렇게 존재한다.    

이렇게 감정을 포착하고 왜 느꼈는가? 무슨 의미인가 질문하고 답을 쓴다. 그렇게 글이 탄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 햄스터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