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거리로 생선 한 마리 살까하고 아이들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나섰다.
코로나로 개학이 미뤄져 집에만 있기도 답답한데다 온라인 학습에 나온 재래시장도 직접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다.시장에 가면 꽈배기나 핫도그, 떡볶이, 어묵 중에 하나로 군것질을 하겠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큰 목적 같아 보였다.
집을 나서자 영산홍부터 만난다. 진분홍, 연분홍, 하양까지 일부러 그렇게 심은 듯 몇 미터 갈 때마다 색깔이 바뀐다.민들레는 뭐가 급한지 벌써 홀씨를 가득 만들어 놓았다. 정말 한번만 피고 마는건지 만든 홀씨가 올해 안에 다시 꽃이 되는 건지 궁금해하는 동안 아이들은 민들레로 팔찌를 만든다. 팔찌는 몇 걸음마다 장식이 추가되는데 제비꽃에 좁쌀냉이꽃에 종류도 색깔도 모양도 다양하다. 자연산 판도라 팔찌다.
재래시장에 대한 나의 인상은 복숭아향기로 남아있다. 방학이면 다녀오는 외갓집을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경주역 앞 시장을 들렀다. 시장은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복숭아 향기로 가득했다. 여행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외갓집은 나의 유일한 여행이었고 외갓집 가는 길에 있는 시장은 그냥 시장이 아니라 들뜸의 장소였다. 경주 재래시장이 갖는 다양한 품목도 일상을 떠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농촌이면서 바다도 가까워 돈배기라 불리는 상어고기, 고래고기에 까치라 불리는 쥐치회도 썰어 놓고 팔았다. 누가 그렇게 제사를 자주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사음식만을 파는 곳도 있었다. 제사상에 꼭 올라가는 돈배기도 지져놓고 민어, 조기도 튀겨서 팔았다. 경주시장의 별미는 인절미다. 여느 인절미처럼 한입크기로 잘라서 팔지 않고 길쭉한 손바닥 크기 만큼이 하나였는데 초록고물과 노랑고물, 두개가 한 포장이었다. 생미역도 인상적이었는데 나의 할아버지는 된장찌개에 생미역을 자주 넣어 드셨던 기억이 난다.
재래시장이 나에게 주는 설렘과 이색적인 느낌때문인지 예전보다 볼거리가 덜한 지금의 시장도 나에게는 각별한 느낌이 든다. 초록 콩고물 인절미도 없고 상어고기도 없지만 그곳에 가면 외갓집 가는 기분이 남아있는 듯하다. 나에게는 덜 풍성한 곳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곳이 바로 여기다. 입구부터 닭튀김 냄새가 진동한다. 가서 보니 요즘 말하는 옛날통닭을 수십마리 튀겨서 엎어 놓고 옆 가게에는 납작한 뻥튀기가 혼자서 눌려 나온다.생선가게는 상어고기와 쥐치 대신 고등어, 갈치, 민어, 청어, 삼치, 우럭, 가자미, 임연수, 쭈구미, 낙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몹시 신기해 한다. 정육점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닭발이다.
'저게 닭이 걸어갈 때 땅 짚는 그 발이 맞냐' 고 묻는다.
시장이 제법 길다. 통닭집도 지나고 떡집도 지나고 꽈배기집도 지나서 온 곳은 분식집이다. 떡볶이, 순대, 어묵, 매운어묵, 튀김을 판다. 큰딸은 어묵 두 개, 작은 딸은 한 개를 먹고 국물 한 컵씩 마셨다. 세 개 이천원이다. 구경도 하고 군것질도 했으니 이제 장을 보러 간다. 원래 목적이 생선이었으니 아까 들렀던 생선가게로 다시 왔다. 고등어는 늘 먹는 것이고 민어는 지난번에 만원에 세 마리 사서 두 마리 구워 먹고 아직 한 마리가 냉동실에 있다. 오징어는 금어기라 냉동밖에 없다. 아이들의 선택은 낙지다. 한 마리에 육천원. "낙지 두 마리 주세요". 큰 바가지에다 낙지 두 마리를 넣고는 굵은 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내장을 제거하고 주셨다. 눈알에 먹물이 있어 눈알도 빼고 달라고 할까하다 관뒀다. 온누리 상품권 한 장과 천원짜리 두 장 드렸다.
낙지는 얼려두면 질겨지니 오늘 저녁에 빨갛게 볶음으로 먹어야 겠다.
아내가 일이 힘들었는지 손이 부어 있다. 오랜만에 요리라는 것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