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을 읽고 소설은 이렇게 쓰는구나 싶었다. 신문 칼럼을 읽고 구조와 소재 파악하는 연습을 수년간 해서 그런가 긴 소설 한편을 읽으면 따로 놀던 인물과 구성이 이제는 하나의 구조물로 다가온다. 내가 언젠가 설명문이 아닌 소설을 쓴다면 이 책의 플롯을 따라서 쓰고 싶다.
책을 통해 할머니와 어머니, 딸의 결핍과 욕망을 읽고 나의 삶과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더 깊은 울림은 준 건 작가가 인용한 문장이었다.
“산 것 같지도 않은데 한 평생이 다 갔어” -벚나무 동산 p139, 안톤 체호프-
책이 내게 남긴 한 문장.
‘한 것도 없는데 주말이 다 갔네’ 가 최대치로 확장된 허탈함.
산 것 같으려면 어째야 하는 걸까? 사람 중에 산 것 같다고 느끼는 이가 있기는 할까?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다 실행하면 후회가 없을까?
계획대로 산다면 최소한 ‘나 뭐했지?’라는 생각은 없어질 것 같다. 양적으로는 그렇다. 그럼 질적으로는? 계획을 실행하고 목표한 성과까지 냈어도 후회는 있을 수 있다. 현재의 결과는 미래에 재평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또한 지금의 성과가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하니까.
인생은 너무 범위가 크니까 주말로 한정해 놓고 보자. 이번 주말은 정말 잘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갔다 와야 할까? 텔레비전 보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주말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면 잘못 보낸 것일까?
결국 후회는, 남이 시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했을 때, 실패하더라도 내가 주도적으로 했을 때, 뭔가 하고 있을 때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인지하고 있을 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해봤을 때 덜한 것 같다.
첫 사랑과 결혼 못 해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를 못 해봤을 때.
사업이든 공부든 실패해서가 아니라 시도조차 안했을 때.
성공은 못 했더라도 이런 저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때.
병으로 가까운 사람을 보냈을 때 ‘한국에서 안 되면 외국이라도 가서 수술해 볼 걸’ 이라고 후회하듯이.
잠을 자더라도 이번 주말은 잠이나 실컷 자야지 하고 잔다면 그 주말은 잘 보낸 게 된다.
조수석에 앉아 멀미만 하고 있지 말고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더라도 직접 운전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작가가 인용한 이 한 문장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어머니가 인아를 낳자마자 유학을 떠나고 중학생 아들을 둔 인아가 무대 디자이너가 된 것, 모두가 ‘산 것 같은 것’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