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출간하면 독자들이 블로그나 카페에 서평을 쓰기도 한다. 사람의 본성이 원래 착해서인지 서평은 주로 자신이 좋게 받아들인 내용으로 채워진다. 가끔은 내용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이나 비판을 쓰기도 하는데, 그게 인신 공격성 글이 아니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내가 쓴 글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평가를 했을 뿐인데도 마치 그 사람이 흉기를 들고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있는 기분이다. 비난이나 비판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방법은 없을까?
장자 천도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사성기가 노자를 만나 물었다.
“저는 선생님께서 성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 뵙기를 원했고 100일 동안 발바닥에 몇 겹이나 못이 박혀도 감히 쉬지 못하고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을 뵈니 성인이 아니군요. 쥐가 구멍을 파서 쌓인 흙더미에 푸성귀가 흩어져 있는데도 그대로 두시니 이는 물건을 아끼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날 음식과 익힌 음식이 앞에 늘어놓을 수도 없을 만큼 이미 많은데도 오히려 한없이 끌어 모으고 계시더군요.”
노자가 말했다.
“자네가 나를 소라고 부른다면 나는 나를 소라고 생각할 테고 나를 말이라 부른다면 말이라 생각할걸세. 만약 나에게 어떤 사실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그 사실에 따라 이름을 붙일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같은 재앙을 거듭 당하는 것이야. 내가 따르는 것은 본성에 의해 그냥 따르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해서 따르는 것이 아닐세.”
책 장자에는 노자, 공자, 공자의 제자들이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있다.
노자는 생존 당시에 주나라 국립 도서관장을 지냈을 만큼 학식이 높고 존경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사사로운 비판을 가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을 정체성이라고 하고 남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평판이라고 한다. 노자는 남이 자신에게 가하는 평판에 있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누구든 남이 나에게 하는 평판을 들어 보면 그것이 질투에 의한 인신 공격성 말인지, 감정이 절제된 말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알 수는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네가 감히 나를 평가해?’ 라고 생각하기 쉽다.
노자는 자기보다 한참 젊고 학식이 높지 않은 사람의 비판에도 ‘아, 내가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노자는 자신의 책 도덕경에서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라고 말한다.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보이는 대로가 본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의 눈에 보이는 내가 나의 참모습이 아닐까?
여기서 비난과 비판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난과 비판을 들어 보고 상대가 화가 난 채 감정을 잔뜩 실어 한 말이라면 받지 않고 무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구나’ , ‘이 비판을 근거로 나를 객관화해보자’ 마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노자의 말처럼 재앙을 피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