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결정적 조건

사실세계와 지각세계

by 손정 강사 작가


앞에서 살펴본 의사소통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각이다. 여기서 중요하다의 의미는 가장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통의 성립 여부로 중요성을 따진다면 어느 하나 우열의 가리기 는 힘들다. 재료, 부호화, 채널. 소통환경, 지각, 반응 무엇 하나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도 다른 것들은 노력에 따라 고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지각은 다르다. 인간의 머리에 고착된 생각이 쉽게 고쳐질리 없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지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고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지각을 고쳐서라도 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지적 일관성때문인데 인간은 자신이 지각한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지각의 결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인상을 가지고 태도를 취하고 태도를 취한대로 행동하게 된다. 오해가 생긴 대상과는 말을 하기도 싫고 더 나아가 적대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것이 정말 오해라면 우리는 청자가 인지한 지각세계와 화자가 처음 보유한 사실세계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인석교수의 《조직행동이론》에 언급된 회장님과 총무이사의 이야기는 사실세계와 지각세계가 일치하지 않았을 경우 일어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기업의 회장님들 입장에서 경영환경은 언제나 위기상황이다. 어느 해 시무식에서 회장님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의례적인 말로 ‘국내외 경기가 좋지 않으니 모두들 근태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근태란 근무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늘 잘 해왔듯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달라는 사실세계에 입각하여 신년사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때 우리의 부지런한 총무이사님의 지각세계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회장님이 직원들의 출퇴근, 근무규칙 준수에 대해 불편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총무이사의 지각세계다. 사람은 자신이 지각한 대로 행동한다고 했다. 이사님이 무슨 일을 했을까? 정문 경비실에 전화하여 12시 점심시간 전에 밥 먹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게 했던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와 미옥이가 종로 반줄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서도 만나지 못한 이유도 화자의 사실세계와 청자의 지각세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의 지각세계대로 행동했으니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옥이의 사실세계는 반줄 1층이고 정봉이의 지각세계는 2층이었던 것이다.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반응, 피드백이 중요한 이유는 이 사실세계와 지각세계의 불일치를 막을 수 있는 예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반줄에서 만나자라고 했을 때 1층인지 2층인지 한번만 더 물어봤더라면 그래서 화자의 사실세계를 확인했더라면 어땠을까? 그토록 오래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가족오락관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한 줄로 선 다음 귀에는 큰소리가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입모양만으로 앞사람이 전하는 단어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을 본적 있을 것이다. 첫 사람의 사실세계와 마지막 사람의 지각세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기서 내가 겪었던 실제 사례를 하나 소개해 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어린이들은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 물약과 함께 준다. 그리고 용량을 정확히 지켜서 먹이라고 빈 약병도 하나 준다. 어느 날 딸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서 처방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침 바로 옆이 빵집이라 거기서 빵도 사고 약도 먹일 겸 들어가서 빵을 사고는 약을 정량에 맞추어 물약과 가루약을 넣고 먹인 후 약병에 묻어 있는 약의 잔량을 알뜰히 먹이기 위해 빵집 직원에게 약병에 먹는 물을 좀 담아 달라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직원이 약병을 깨끗하게 헹군 후 새 물을 넣어 준 것이다.


나의 사실세계는 ‘약을 정량에 맞게 먹이려고 하니 이 약병 그대로 먹는 물을 담아 주세요’ 였고 빵집 직원의 지각 세계는 ‘아이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니 먹는 물을 좀 담아 주세요’ 였던 것이다. 당연히 사람은 자신이 지각한 대로 행동하므로 직원은 친절하게도 약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을 담아 주었던 것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둘 다의 잘못이다. 화자인 나는 청자가 지각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청자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잘못이고 청자는 자신의 지각세계에 대한 확신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잘못이다. 아마도 빵집 직원이 젊은 학생이었던 것으로 보아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나면 으레 껏 먹이고 난 약병에 물을 담아 약의 잔량까지 먹일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상황을 설명해줬어야 한다. 반대로 청자인 그 직원은 자신이 생소하게 겪는 상황이라면 ‘여기에 그대로 담아 드리면 될까요? 씻어서 드릴까요?’라고 한번 물어봤더라면 화자의 사실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상황은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 착각하고 자신이 인지한 지각세계가 당연히 사실세계와 일치할 거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 인지한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을 생략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번 행동으로 옮겨진 지각세계는 되돌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지각을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지각의 상세한 정의와 각 단계마다 오류를 줄이는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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