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 강사 작가 Jul 17. 2020

황기 백숙

'초복, 삼계탕집 앞 길게 늘어선 줄'

사진과 함께 쓰인 기사 제목이다.

'황기백숙' 이라는 식당 간판과 함께.


백숙은 고기나 생선을 별다른 양념없이 하얗게 익힌 음식을 뜻하지만 백숙하면 닭백숙으로 통한다.

황기백숙은 닭에 황기를 넣고 익혔다는 뜻이지만 황기를 넣든 인삼을 넣든 닭백숙은 삼계탕으로 불린다.

그러고보니 복날에 '삼계탕 먹으러 가자' 대신 '황기백숙 먹으러 가자' 라고 말한적은 없는 것 같다.


인삼이 비싼탓인지 닭백숙용 육수 재료에는 으레 황기와 대추가 들어 있다. 초복인 오늘 내가 산 재료에도 황기가 들어 있었다. 신문 기사가 호기심을 자극한데다 나역시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 메뉴는 삼계탕이라고 말해놓은 터라 정보를 찾아 보았다. 비싼 인삼 대신이라고만 하기엔 황기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 터다.


우선 황기는 자신의 향은 강하지 않지만 다른 물질의 잡내는 줄여준다. 또한 땀샘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좋다. 우리 몸에 침투한 균을 잡아주는 세포증식에도 도움을 준다. 백숙의 주재료인 닭은 단백질이 많아 원기회복에 좋고 소화가 잘 된다. 닭이 가진 기본적인 효능에 다한증을 치료하고 균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황기를 넣는다면 여름철 보양식으로 이보다 좋은 맞춤형 음식이 있을까 싶다.


황기백숙은 닭 몸속에 찹쌀과 황기, 대추를 넣고 통채로 삶기도 하지만 나는 황기 국물을 더 많이 내기 위해 닭을 넣기 전에 황기와 대추만 넣고 40분정도 끓인다. 그 물에 잘 씻은 닭을 넣고 양파, 마늘, 파를 더해 닭다리를 잡으면 뼈가 쑥 빠질정도로 푹 익혔다. 닭만 건져 소금에 찍어 먹도록 아이들과 아내에게 주고 불린 찹쌀과 녹두, 채썬 부추와 당근을 넣고 끓였다. 고기를 먹는 동안 죽을 만드는 것이다. 죽은 소금으로만 간하고 지난 겨울 김장김치와 이번 여름 새로 담근 오이 김치와 함께 먹는다.


치킨을 먹을 때도 바싹한 튀김옷을 벗겨내면 닭고기와 뼈 사이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황기백숙에서 닭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황기의 힘이다. 황기가 복날의 주인공인 닭이 사람에게 단백질을 제공하도록 도운 것이다. 닭이 가진 단점인 냄새를 잡아 닭을  빛내준다. 닭이 갖지 못한, 여름철에 필요한 기능인 땀샘조절은 자신이 직접 맡는다.


닭을 나에게 비유하고 황기를 책에 대본다면 내가 가진 단백질은 무엇이고 잡내는 무엇일까?

결국 책을 읽는 것도 나의 단백질을 빛내고 잡내를 잡기 위함이다. 내가 갖지 못한 땀샘 조절 기능을 얻기 위함이다.

글에 사용되는 모든 소재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듯 내가 읽는 모든 책은 나를 빛내고 보완하는데 쓰여야 한다. 왜 읽는지도 모르고 읽는 행위는 독서가 아니며  읽고도 느낀바를 적어 놓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책은 황기여야 한다.

백숙에 괜히 황기가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초복, 황기백숙집 앞 길게 늘어선 줄'로 바꿀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운 아삭고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