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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Sep 07. 2022

강사 일기 1

신입사원교육

"내일 교육 현장에는 이철규 대리가 운영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A기업 신입사원교육을 수주하고 나에게 '스마트하게 일하는 법' 강의 8시간을 의뢰한 교육회사 대표의 카톡이었다. 다음날 9시 교육 시작에 맞추어 KTX를 타고 울산역에 내려 택시에 올랐다. 30분을 더 가서 A기업 정문에 내렸다. 지난 상반기 신입사원 교육과 심화교육을 진행한 후 돌아갈 때 택시 잡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어 저녁 6시 교육 끝나는 시간에 와 줄것을 부탁하고 정문을 들어 섰다. 


5층 교육장에는 신입사원으로 불리기에 적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열 두명이 명찰을 목에 걸고 앉아 있었다. 올거라던 이철규 대리는 없었고 낯 익은 A기업 교육담당 과장이 와서는 "제가 따로 소개 안해도 되지요? 시간되면 시작해 주시면 됩니다" 하고 사라졌다. 이래 저래 교육 운영을 돕는답시고 강의장 뒤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보다 혼자 강의하는 것이 편해진지 오래다. 익숙하게 컴퓨터를 켜고 프로젝터와 스피커가 잘 나오는지 확인한 후 유튜브에서 노동요를 찾아 틀어 두었다. 음악은 금세 적막을 없애 주었고 사람 사이의 어색함도 가려 주었다. 어느 강의장이든 항상 배터리 부족 상태인 무선 마이크의 건전지도 갈아 넣고, 강사를 위해 따로 챙겨져 있지 않은 물은 학습자 간식 틈에 있는 생수병을 하나 갖다 놓는 것으로 대신하고 강의 대본을 보면서 9시를 기다렸다. 


한 학기 동안 연속해서 수업을 하는 교수는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했지?"하고 학생들에게 물을 수도 있고

오늘 적게 하면 다음 시간에 진도를 많이 나가면 된다지만 하루 8시간 단발성 강의를 하는 강사는 시간이 남아도 모자라도 문제가 되므로 강의 대본은 1시간 단위로 구성했다.


1교시 강의 대본

강사 소개, 8시간 강의 목차 안내

나의 직장 생활 경험을 예로 들어 직장 생활에 영감을 주고 격려하는 오프닝 멘트

가벼운 퀴즈를 내고 맞추는 사람에서 내 책 한 권 선물 

(여기까지 15분)

조 구성, 조장 선정 (각 조에서 옷차림이 가장 가을스러운 사람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스마트하게 일하는 법 관련 영상 보여주기

영상에 출연한 사람이 상사에게 혼난 이유를 조별 토론을 통해 도출하기

(여기까지 누적 학습시간 35분)

각 조장이 도출한 내용 발표하기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주며 스마트하게 일하는 법의 핵심 키워드 제시

(여기까지 누적 학습시간 45분)

휴식 시간 15분


9시 정각, 1교시 시작. 

인사를 하고 집중된 시선을 향해 말문을 텄다.


"여러분들 입사한지 며칠 되었나요? 아직 업무는 해보지 않으신거지요? 그럼 2주간의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면 부서 발령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시겠네요. 어떠신가요? 지금쯤은 합격의 기쁨은 많이 가라 앉았죠? 오히려 마음 속에 살짝 걱정이 있지 않으신가요? 부서에 가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나의 상사는 어떤 사람일지. 

이처럼 사람은 늘 당면한 일을 새로운 걱정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걱정이 해소된다해도 그 자리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와서 채우곤 합니다. 행복이란 먼데 있지 않고 걱정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요, 직장에서 걱정은 일을 잘 할 지식과 기술이 있고, 실제로 잘 해 낼때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8시간 동안 함께할 내용들이 여러분의 걱정을 없애 줄 것이란 기대감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1교시가 끝난 후 빠르게 2교시 강의 대본을 읽어 보고 흐름을 숙지했다. 늘 하는 강의지만 공부를 통해 강의 내용도 업데이트되므로 강의 전에 숙지하고 시뮬레이션 해본다. '내가 학습자라면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내가 학습자라면 이런 실습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설계한 강의라 별 문제는 없겠지만 1교시 동안 감지한 학습자의 성향에 비추어 다시 한번 상상해보는 것이다.


8교시까지 강의는 대본 대로 흘러 갔다. 대본이 치밀했던 것도 이유지만 매너리즘,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지 않은 신입직원이기에 매 시간 호기심으로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저녁 6시가 가까워 오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여러분, 회사생활 하시다 보면 능력에 부치는 상황, 회사를 떠나고 싶은 상황, 매너리즘에 빠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70%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순간 힘들다면 그게 70% 고지인 것입니다. 그 순간을 넘어서야 성공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곳에서 70% 벽에 막혀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 가서도 70%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큽이다. 좋은 회사 들어오신 만큼 여기서 먼저 그 벽을 넘어 보시기 바랍니다. 3개월 후 심화 학습 때 뵙겠습니다."


3개월 후 심화학습 때 꼭 다시 보자고 강조한건 지난 상반기 신입사원교육을 3월에 실시하고 6월에 심화교육을 왔을 때 절반도 남아 있지 않던, 이들의 6개월 선배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화학습에 참가한 사람들 마저 쉬는 시간에는 다른 회사 연봉 이야기, 근무 환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9월이니 12월 심화학습 때 다시 오게 될 A기업에서 나는 과연 오늘 만난 신입사원들 중 몇 명이나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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