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사에서
또 다른 대조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본다. 법인스님의 《검색의 시대,사유의 회복》에 나오는 이야기다.
산중 봄날의 어느 오후 산승 몇이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시나브로 한가로움과 정감이 무르익을 무렵, 돌연 산사의 고요를 깨는 큰소리가 담장 밖에서 들려왔다. 귀를 기울인즉, 어느 문화답사 모임의 인솔자가 요란한 확성기로 탑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생뚱맞은 불협화음에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한 스님이 대뜸 일어나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곧 봄날 산중의 평화로움을 앗아간 그들에게 불호령이 내려질 터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귀에 거슬리는 확성기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스님의 불호령은 들리지 않았다. 짐작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우리는 찻잔을 내려놓고 문 밖 동향을 주시했다. 계속되던 확성기 설명이 잠시 멈추자 마침내 그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이 절 참 좋지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네 저희는 ○○대학 사회교육원 문화답사모임에서 왔습니다.
네 아주 잘 오셨습니다. 안에서 잠시 들었는데요 탑비 설명을 참 잘하시네요. 이 절에 사는 저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계시네요 내용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시고요.
고맙습니다.스님. 과찬이십니다.
해박하고 목소리도 참 좋은데 원래 음성으로 말씀하시면 그 좋은 목소리가 더욱 살아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스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신 것이겠지요. 혹시 점심 전이면 공양하고 가십시오.
저희는 먹었습니다. 다음에 시간 내어 차도 마시고 좋은 말씀도 듣겠습니다.
대조다.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좋은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메시지의 참뜻을 알게 했던 것이다. 만약 젊은 스님이 뛰어 나가서는 노스님들의 우려 대로 확성기 소리에 대해 화난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면 답사온 사람들은 귀를 열기 보다는 닫으려 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잘못이야 인정하겠지만 마음이 좋을리 있겠는가? 답사도 망치고 차를 마시던 스님들의 시간도 더 이상 평화롭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