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택하기 쉬운 자극을 받아 들인다.
회사에 명시된 인사평가 규정은 영업실적, 윤리성, 책임감, 협동성 등을 골고루 반영한다고 되어 있지만 결국 승진은 영업실적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동 경기에서 축구는 골을 넣는 공격수의 역할뿐만 아니라 수비수의 역할도 중요한데 연봉은 공격수가 더 많이 받는다. 야구에서는 안타, 수비, 주루 플레이도 중요하지만 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가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다. 마찬가지로 농구에서는 리바운드, 스크린 플레이, 어시스트도 중요하지만 득점을 많이 하는 선수가 연봉을 훨씬 많이 받는다. 이유가 무엇일가? 이것도 소통의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장에서는 소통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대개 소통의 관건은 '화자가 청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또는 청자로서 화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이다. 맞다. 그게 핵심이고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약 화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였고 청자는 화자가 보유한 사실세계를 올바르게 선택하고 해석했다. 그런데 소통의 제일 앞단에 위치한 화자가 만든 메시지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화자가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을 보고 만든 메시지 자체가 왜곡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통이란 화자와 청자의 소통이전에 화자와 현상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이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대상을 지각하는 것도 소통인 것이다. 인사평가 규정의 여러 항목에 가중치가 골고루 분산되어 있음에도 영업실적에만 평가자가 임의로 가중치를 더 부여한 것은 인사평가 자료를 잘못 지각한 것이므로 지각오류다. 축구에서 수비만 잘해도 0대0으로 비길 수 있고 공격수가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수비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실점을 많이 해버리면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수비수들이 제대로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지각 오류인 것이다. 대체 이러한 일은 왜 발생하는가?
인지적 구두쇠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임을 고려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자신 앞에 주어진 문제에 대해 정보를 꼼꼼히 분석하여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겠지만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두고 인간은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제한된 합리성을 설명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이 가진 인지적 구두쇠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인지적 구두쇠란 인간은 인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를 싫어하여 대상을 손쉽게 판단해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이로 인해 최적해를 찾기보다 만족해를 찾고 마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성향은 의사소통에도 고스란이 나타난다. 외부 현상이나 타인의 말에 대해 그 것을 둘러싼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함에도 본능적인 인지적 한계와 더불어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려는 습관이 발동한다. 내가 과거에 겪은 결과로 이미 가지고 있는 인상을 꺼집어 내거나,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던지 낮선 것은 고민하기보다는 외면해버리는 성향이 모두 인지적 구두쇠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어쩌면 소통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인간이 지닌 본능과 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을 둘러싼 현상을 올바르게 지각해야 하고 타인과 좋은 관계도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본능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려는 쪽으로 발동한다. 인간은 이미 생명체로서의 개별동물이라기보다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는데도 의식의 작용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인간은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사는 길이 아니라 내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린다. 이것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마음이 넓다, 사회성이 좋다, 대인관계를 잘한다는 말로 칭찬하고 닮고 싶어 한다. 나는 절대 바뀌지 않은 채 말이다. 인지적 구두쇠를 벗어나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가? 더 나아가 내가 가진 가치관이 내가 형성한 것이 맞는가? 부모님, 선생님, 시대상황에 의해 강제된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힘든 일이다. 힘든 만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질문을 습관화해보자. 나는 지금 객관적이고 종합적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알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모른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