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에 가면 오늘도 어김없이 역경을 딛고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TV 강연 프로그램에도 실패를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출연하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본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수많은 성공사례가 방법까지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음에도 그들을 따라서 했더니 나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성공은 항상 변화를 요구한다.
어제의 나를 버리지 않고 하던 대로 했더니 성공했다는 사람은 없다. 경영전략가 크리스텐슨이 말한 파괴적 혁신도 성공한 과거의 기억을 파괴하고 다시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말이지 않던가. 그렇지 않으면 파괴할 것도 없이 그저 새로운 룰을 들고 등장한 신규 출현자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 신규출현자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성공으로 생긴 작지만 달콤한 기억을 갖기 시작한 순간 그 것은 곧 나의 지속성을 위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다.
파괴적 혁신, 창조적 파괴, 말이 쉽지 현재의 편안함을 버린다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코닥이 망한 이유도 잘 팔리고 있는 필름을 버리지 못해서다. 인류가 세계 최초로 달에 발을 딛는 장면을 촬영한 찬란한 기억을 어떻게 파괴하기가 쉽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개인이 자기계발서을 읽으면서도 그들을 따라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쥐꼬리만한 월급이라 푸념하던 것도 막상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들면 아쉽기만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조직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아 도전하고 커리어를 넓혀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러기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다. 혹시 우리는 그동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내가 변해야 할 이유보다 변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변할 수 없는 이유, 성공한 그들은 우리와는 원래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변명만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소통은 사람과도 하는 것이지만 사물과 현상과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소리를 선택하지 않고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지하지 않으니 행동이 일어날리 없다.
찰리 채플린과 그레타 가르보
“유성영화는 사라질 것이다”
모던타임즈를 비롯한 무성영화시대의 스타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이 말은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가 출현한뒤 그가 보인 그의 반응이다.
“유성영화에 6개월의 시간을 주겠다”
4년뒤인 1931년에 한 그의 말은 유성영화에 질투 또는 푸념이었다. 그도 결국 1940년에 가서 자신의 첫 번째 유성영화을 찍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무성영화시대에도 스타였고 유성영화시대에도 성공을 거둔 배우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말에서 보듯 인간은 자신이 딛고 선 자리를 부정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좀 더 일찍 유성영화에 도전을 시작했다면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
반면, 그레타 가르보는 달랐다. 1927년 안나 카레리나로 무성영화시대에 대스타였던 그는 유성영화가 출연하자 곧바로 자신도 변화에 올라탄다. 1931년 마타하리로 유성영화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1936년 춘희를 통해 절정의 유성영화 스타가 된다. 찰리 채플린은 그로부터 4년뒤에나 유성영화를 처음 찍었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자극을 억압하지 않고 받아 들였고 한 사람은 억압했다.
성공은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버리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