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중계를 보다보면 가끔 이런 말이 들리곤 한다.
“남미 선수들은 다혈질이라 초반에 경기가 잘 안 풀릴 경우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상대팀은 전반전에 실점을 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전형적인 고정관념이다. 상동적 태도라고도 하고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이라고도 한다. 사람을 개인의 특성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 넣어 전체를 한꺼번에 판단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남미 선수들을 다혈질이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맞다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럴 리는 없다.
고정관념은 사람을 집단화하는데 있어서 인종, 지역, 종교, 성별, 나이, 출신학교, 직업을 기준으로 삼는다. 앞에서 언급한 남미 사람은 인종이다.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나이든 사람은 보수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로 범주화하는 것이며 직장인을 화이트칼라, 블루칼라로 나누는 것은 직업에 의한 고정관념이다.
소통의 숨은 본질, 에토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로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말하는 내용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로고스, 청자로부터 감정적 동화를 끌어내야한다는 파토스, 그리고 화자의 인격인 에토스가 그것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고 감정적으로 끌린다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사람이 싫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귀를 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상대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에토스를 확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래서는 소통이 될리 없다.
12angry men에도 배심원들의 이러한 시각을 담은 대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소년은 빈민가에서 자랐다. 선생님에게 돌을 던져 감옥에 갔다 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범행을 판단하는데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몇 배심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런 애들은 태어나기를 거짓말쟁이라고”
“그 소년은 이미 전과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첫 투표에서 유죄 11, 무죄 1이 나온 뒤 두 번째 투표에서 한 명이 무죄로 의견을 바꿨을 때 그 투표가 비밀투표로 진행되었음에도 빈민가 출신의 5번 배심원이 그 당사자로 공공연히 의심받는다. 같은 빈민가 출신이니 동정으로 무죄로 바꾸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의해서다.
소통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근거로 상대의 의견을 받아 들이는 과정이다. 상대에 대한 에토스가 올바로 인지되지 않으면 로고스와 파토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평소 부도덕한 행위와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을 자주하는 사람의 말이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을 미리부터 집단의 범주에 넣어서는 곤란하다.
기업에서 경영진과 노동자 측이 임금협상을 할 때도 고정관념이 작용한다. 이것은 직업, 역할에 의한 범주화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학교에 따라, 출신 지역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도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 의한 회상용이성의 산물이다. 고려해야할 많은 정보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 판단의 시간과 노력을 단축시키기 위함이다. 일면 효율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의사소통에서 에토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아주 위험한 지각오류이다. 고정관념을 갖게 되면 상대와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메시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이미 기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에서 구매팀은 늘 가격을 깎으려고만 한다던가 생산기술팀은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값비싼 외국산 장비만 선호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면 협력을 기대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없애는 방법은 역으로 그 사람과 의도적으로 접촉할 기회를 만들고 많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고정관념이 처음부터 상대와 대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 그 것을 없애는 길은 내가 혹시 저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통해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 일주일에 한번 씩 업무시간을 쪼개어 티타임을 갖는 것도 부서간 벽을 허문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에버노트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하는 IT회사에서 부서간에 소통은 특히 더 중요하다. 또한 고어앤에소시에이츠와 같은 회사는 주로 섬유, 화학과 관련된 제품을 생산함에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일부러 출신 학과를 다양하게 선발한다. 다양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생각이 있을 것이므로 조직의 창의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개인을 개별로 판단할 때 소통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