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의 말이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제목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은 만든다지만 살면서 나를 만드는, 그리고 내 머리를 도끼로 내려치는 듯 영감을 주는 책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운 좋게도 그런 책이 몇 권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다.
보통 코칭이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면 상담 받는 사람이 전혀 몰랐던 해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답은 이미 상담 받는 사람이 다 알고 있으므로 그 것을 끄집어 내준다고 한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해법을 말하게 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자신의 답을 확인 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 것이 이루어졌을 때 확신과 함께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한다. 책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사람 사는 일이 다 비슷하므로 그 말도 맞는 것다. 요즘들어 밀레니얼 세대니 N세대, Z세대라는 말로 세대 갈등이 마치 완전히 새로운 문제인 것처럼 말들하지만 5000년전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써있다고 하는 걸 봤을 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도 같다.
하지만 《생각의 좌표》만은 달랐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에게 충격을 준 문장을 발췌, 재구성하여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칸트는 인간이 생각하는 바에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지금 내 머릿속에는 나만의 의식, 가치 기준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머릿속이 텅 비어 있었을테고 도화지로 보자면 하얀색이었을 때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찬 가치 기준은 누가 채워 넣었을까 생각해본다면 분명히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님이고 선생님이고 텔레비전, 신문, 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인 사회를 비판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어 나가면서 기존에 형성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나의 주체성을 확장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인도 내 삶의 주인도 되기 어렵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머리는 도끼로 맞은 듯 멍해졌다. 거기에다 작가는 결정타를 다음과 같이 날린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가하고 내 생각을 수정해 나가지 않음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핸들을 고정시켜 놓은 채 직진만 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이란 후진이 없다. 앞으로만 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좌회전, 우회전 뿐이라는 얘기인데 내가 생각을 고치지 않음은 남이 고정시켜 놓은 핸들을 잡고 직진만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나는 어떤 책이든 누구의 말이든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지식이 얕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책을 통해 많이 습득하는데만 몰두했지 그 지식들이 과연 옳은 것인가 비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면 그를 읽었고 공자의 말을 공자님 말씀이라고 하길래 그저 읽고 옳겠거니 하고 따르려만 했을 뿐이다. 내 스스로 핸들을 틀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핸들을 고정시킨 채 자기만의 방향을 간다. 이런 우리가 모두 소통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니 소통이 쉽겠는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합리적, 이치에 부합하는 인간이라면 나와 다른 생각이 나타나면 견주어 보고 그에 맞게 내 생각도 버릴 줄 알아야 하지만 내 생각을 합리화하여 현상을 거부하려 드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고정관념이고 확증편향인 것이다.
이런 우리들이 서로 대화라는 것을 한다. 소통은 외부에서 들어온 내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주체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미디어와 제도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가치를 늘 의심하고 수정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4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1.폭넓은 독서 : 이것은 그저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생각을 주체적으로 참고하는 것이다.
2.열린 자세의 토론 :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을 열린 자세로 참조하고 주체적로 나누는 것이다.
3.직접견문 : 오감을 가진 주체로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4.성찰 : 앞의 3가지를 통해 만나는 생각들이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서로 다투고 비벼지고 통하고 정리되는 과정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다는 것은 작은 우주끼리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주가 자기의 성찰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닌 남이 만들어 준 것을 내 것인양 고집하는 사람끼리는 소통이 되지 않고 서로 부딪히며 직진만 하려는 것과 같다. 늘 묻자. 지금 내 생각은 내 것이 맞는가? 이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