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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Sep 29. 2021

시각의 차이

-조금만 달라져도 매일못 찾겠다꾀꼬리-

우리 집 수건에는 서열이 있다.

예전에는 색이 진한 면 100%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같은 색으로 5~6개씩 산다.

진한 색 수건을 사용하면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으로도 정갈해 보이고

색으로 발수건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수건의 용도 변경의 시기는 오로지 나의 판단에 의해 서열이 정리된다.

수건에서 퇴출당하면 발수건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걸레가 된다.


요즘에는 시간이 많아지고 뒤늦게 살림에 재미를 붙이면서 정리의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이든 정리가 잘되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다.

그래서 책상 위도 깔끔하게 정리한 후에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이건 저쪽으로 옮기면 더 좋겠다’

라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냉장고도 가끔 열어보고 정리를 시작한다.

나중에는 꼭 먹으리라 마음먹고 넣어둔 반찬이 쉬어버리면

게으른 나를 탓하며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다짐하며 앞줄에 세워둔다.

남편은 내가 정리한 후에는 꼭 뭐가 없다고 투덜댄다.

자기가 적응할 만하면 위치가 달라진다는 불만이다.

그렇게 남편은 방향과 위치가 약간만 달라져도 잘 찾지 못한다.



  나는 얼마 전에 모든 수건을 하얀색으로 바꾸고

색이 있는 수건은 무조건 발수건으로 만들었다.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 건 그때부터였다.

그날은 욕실 수납장을 잘 정리해놓고 기분 좋게 커피를 타들었는데

 남편이 굳이 걸레의 서열에 넣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아니 하얀 수건 다 놔두고 왜 걸레로 쓰려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이게 왜 걸레야?”남편은 볼멘소리를 한다.

“아니 맨 위는 수건이고 그 아래 발수건 그 아래 걸레잖아 ”

 “맨날 그렇게 자주 바뀌는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동안 남편이 물건을 못 찾는다고 잔소리만 해댔다.

 늘 내 맘대로 잘 바꾸니까 자기 딴에는 또 바뀌었을 거라 추측하며

 맨 아래가 수건일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필 걸레를 꺼내 든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남편은 매일 불이 나가 깜깜하더라도 손을 뻗어 찾을 수 있도록

늘 있던 자리에 물건을 두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나는 마음 내킬 때마다 내 딴에는 정리를 한다며 위치를 자주 변경한다.  

물건 하나도 못 찾는다고 구박만 했었는데

오늘 처음 남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간의 불편함이 전해져 왔다.

나의 시각에서는 당연한 거지만

남편의 시각에서 보면 당황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나이들어 같이 붙어 생활하다보니

전에 몰랐던 나의 고집과 독선이 하나하나 드러나는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나는 미안한 마음에 생전 해보지 않은 콧소리를 내며

“그럼 다음부터는 자기가 정리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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