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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Nov 20. 2021

"그럴 수 있어"

-성향이나 성격이 다름을 인정해야-

나는 가난한 집 막내라는 이유로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했던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결혼을 강행했다

반대한 친정엄마에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어

화나고 속상한 날에는 숨죽여 눈물로 지새운 밤도 수없이 많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주관을 갖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무렵

나는 과감하게 남편에게 ‘우리 이혼해요’라는 제목의 긴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쓰는 내내  이혼의 정당성을 확신하며 눈물로 써 내려갔다.


나는 메일을 보내고 수신 여부를 확인하며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어이없게도 남편은 3년 동안 그 긴 메일을 끝내 열어보지 않아

지금껏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나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30년 다니던 교직에서 퇴임하면서

소위 말하는 졸혼을 꿈꾸며 나름 새로운 삶을 계획했었다.

남편에게도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싶었다.


나는 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지런히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녔다.

내가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아서 마치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서울대학교 평생교육대학교 프로그램 몇 개를 수강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토론도 하며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제일 배우고 싶었던 것은 심리학이어서 고급 심리학이라는 강의를 듣고 교수님을 모시고

공부를 어떻게 할지 서로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에니어그램을 배우게 되었다.

 다양한 강연 활동을 위해 배워두면 좋을 듯했다.


나는 1번 유형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유형이며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라는 나의 성격이 그대로 결과에 나타났다.

궁금했던 남편은 5번 유형이다.

 행동하기 앞서 생각을 깊이 하는 유형으로, 가만히 은둔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의 모든 행동이 느려 터져서 맘에 안 들었었다.

늘 “왜 저래?”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바라보았고

특히 아이들과 여행에서도 가만히 호텔에서만 놀자는 남편에게 늘 화를 내서

여행을 가면 오히려 더 싸울 일이 많았었다.


 내가 늘 불만을 겉으로 표출하고 싸우려 들 때마다

남편은 오히려 아무 말을 하지 않아 더욱 화나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에니어그램을 배우고 보니 그동안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성향을 타고나서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나는 부부모임을 적극적으로 만들었고

 여러 가족들과의 동반 여행을 권했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백화점 나들이에 적극적이지 않은 남편에게 늘 화를 내고

아이들만 데리고 휑하니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뭐든 하기 귀찮아하는 남편은 분명 아이들을 나만큼 사랑하지 않아서이고

좋은 아빠 역할을 안 하는 거라 단정 짓고 남편을 바라보니 늘 화가 났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성냥개비 몇 개로 몇 시간씩 재미있게 놀아주거나

아빠표 수제비를 만들어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남편 등을 토닥거리며

“당신 그동안 나 같은 마누라 만나 참 힘들었겠다”라고 말해주었다.


요즘 갑자기 MBTI 성격검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한다고 한다.

성격유형을 구분 지어 그 사람이 어떨 것이라고 단정 짓는 용도로가 아니라

“쟤 왜 저래?”에서 “그럴 수 있어”라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용도로 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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