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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Jun 09. 2023

깡패가 되기로 한날 하필..

-둘째의 설움(2)-

나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은 정말 슬펐다.

그렇게 소망하던 새 교복은 언니의 등록금에 보태졌다. 엄마는 잔인하게도 신발주머니며 가방 구두까지 풀세트로 언니 것을 물려주셨다. (결국 일주일 후에 새 구두를 사주시긴 했지만 )

심지어 노트하나까지도 새것은 없고 마치 나를 자극시키려는 듯 언니가 상으로 받아온 노트를 몇 권 넣어주셨다.

매일 걸어 다닐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가끔 엄마는 나 몰래 언니주머니 속에 용돈을 넣어주는 모습도 지켜보았기에 나는 늘 버스 타고 다니는 학교에 갈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그런데 막상 헌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가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고 슬펐다.

내가 너무 착하니까 엄마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언니는 공부는 잘했지만 가끔 엄마한테 말대꾸도 하고 속상하게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늘 엄마를 위로하고 집안일도 도우며 엄마의 힘이 되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만만한 나에게만 이렇게 대하는 것 같아 앞으로는 비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앞 정류장에 내릴 때는 갑자기 책가방을 삐딱하게 옆구리에 끼고 내렸다.

앞으로 깡패처럼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내가 배정된 학급을 확인하고 맨 뒤에 섰다.

아이들이 말은 안 했지만 나를 복학생이라도 되는 듯 몰래 흘금흘금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방도 네 귀퉁이가 낡아 해졌고 교복도 오랜 시간 다림질한 티가 나서 빤질빤질하니 나라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반면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은 온통 새 구두에 새 가방 새 교복티가 났다. 완전 플래시맨이다.

나는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한마디라도 말을 걸면 쌍욕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시간은  왜 그렇게 길던지... 운동장 바닥의 흙을 파서 괜히 앞사람 새 구두에 닿도록 발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쳐서 깜짝 놀랐다.

 “아까부터 혹시나 하고 봤는데 … 너 맞구나"

오 마이갓!!!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스포츠머리를 하고 서 계셨다.

군대 간다고 학교를 떠나신 후 새로 온 학교가 여기라니... 그것도 우리 반 담임으로....


아무 강약이나 고저가 없이 수업을 하셔서 선생님시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졸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내 과외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래도 미친 듯이 졸린 5교시에는 주위를 한번 훑어본다. 조는 아이들의 해괴망측한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오고 잠이 싹 달아난다. 나의 졸음 퇴치법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 대답도 잘하고 똘망똘망 자신을 응시해 주는 나를 제일 예뻐해 주셨다.  한 달에 한번 우리들의 국어책을 걷어서 수업한 내용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검사 후 간단한 멘트를 일일이 남겨주시는 정성도 보여주셨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특별히 내 국어책에 뭐라고 써주셨는가를 궁금해했다. 녹색글씨로 러브레터처럼  길게 칭찬을 써주셨던 글을 서로 읽어보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고 수업 전에 머리라도 빗으면 국어 선생님한테 예쁘게 보일라고 그런다며 놀리기도 했었다. 나는 불과 몇 초 사이 갑자기 신분이 바뀐 듯했다.

옆구리에 꼈던 가방을 단정히 들고 환한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아무나 깡패가 되지는 못하나 보다. 나를 아주 모범생으로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우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능동적으로 움직였고  즐겁고 화려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을 주신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의 설움을 토해낼 수 있는 추억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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