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은 이루어졌지만 아무것도 몰라서 힘들었던 첫 발령지 -
요즘 전보다 TV 보는 일이 많아졌다. 거의 안 보다가 우연히 뭔가에 꽂히면 Netflix덕에 몰아서 보고야 만다. 블랙독도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되었던 드라마이다. 학교 이야기라서 과몰입해서 본 듯하다. 강남의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를 통해 교사채용문제 및 입시를 위한 학교의 몸부림, 교사 간의 경쟁 등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잘 표현된 것 같다.
보는 내내 나의 학교생활이 떠올랐고 상황 설정이 비교적 과하지 않아 좋았다.
물론 나는 사립학교의 경험은 없지만 사립초중고를 거치면서 선생님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보아왔고 나의 교직 생활에서도 늘 있었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희고 앙증맞은 화이트 독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애완견 샵에서 블랙독은 입양이 어렵고 영어 사전에서는 블랙독이 ‘우울증’, ‘낙담’으로도 풀이된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블랙독 같았던 나의 교단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잊을 수 없는 첫 발령지
나의 첫 발령학교는 이천에 있는 OO중학교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이후 글에 나올 교사나 학생들 때문이다)
1983년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령장을 받았다. 진짜 나의 장래희망인 교사가 된 순간이었다.
용인교육청으로 발령이 난 친구와 함께 활기차게 길을 나섰다.
친구가 먼저 용인에서 내리고 홀로 낯선 학교를 찾아가는 길에 혼자 눈물이 날 뻔했다.
용인까지는 포장도로였는데 갑자기 이천방향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비포장도로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천교육청에 가서 장학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갈 수 있는 학교가 세 군데인데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나는 내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 줄 몰라 잠시 당황했다. 아무 정보도 없는 나는 그냥 이름이 제일 예쁜 학교를 선택하며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장학사님은 아무 생각 없는 나를 딱하게 보았는지
“선생님 집이 서울이니까 서울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OO중학교가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미처 통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선배처럼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발령장을 받아 들고 발령지로 향했다.
이천 시내에도 중학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사립학교였고 또 남중이어서 가정과인 내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앞으로 어떤 선생님으로 살고 싶은지 생각했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선생님처럼은 되지 말아야겠고, 어떤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애정과 열정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를 가기 위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물어보았다.
마을 사람 대부분 저쪽으로 쭉 가면 있다고 했다
나는 막연하게 가르쳐준 저쪽 방향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그들이 입을 쭉 내밀어 가리키는 저쪽으로 가다 보니 묘지가 있는 산이 나왔다.
다급해진 나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새 구두에 엄마가 발령선물로 장만해 준 투피스는 이미 흙이 묻어 있었다. 다른 길도 없어 그냥 산을 올라서니 바로 밑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학교종이 보이고 아담한 건물이 나타났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 앞에 섰다.
나의 첫 발령지는 3학년 3 학급, 2학년 2 학급, 1학년 2 학급 총 7 학급의 소규모 학교였다.
같은 울타리에 상업고등학교와 함께 있어서 나는 중학교로 발령은 받았지만 수업은 고등학교 1,2, 3학년 여학생 반까지 모두 맡아야 했다. 비록 주 26시간 수업을 맡아 버거운 감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간직해 온 교사의 꿈이 현실로 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아무래도 산길을 통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저.. 그런데 매일 아침 산을 타고 학교를 와야 하나요? 길이 없나 봐요 ” 내 말에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 모두 크게 웃었다. “또 누가 그리로 알려줬나 보네 길이 있지 왜 없어?”
나는 순간 바보가 된듯했다.
나는 당장 3. 2일 입학식부터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대충 안내를 받았다. 자세한 건 어차피 3.2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업할 책 만해도 8권이라 (당시에는 여학생들에게 가정, 가사과목을 모두 가르쳤던 시기라 과목수가 너무 많았다) 무겁게 교과서를 받아 들고 안내받은 길로 나섰다. 멀쩡하게 포장된 좋은 길을 놔두고 굳이 지름길이라며 산길로 안내한 주민들 때문에 나의 첫 학교출근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