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과 한 상자

-문제해결력은 문제상황에서 나온다-

by 집공부

어릴 적 엄마는 우리에게 이상한 미션을 주시곤 했다.

사과 한 상자(예전에는 짚더미 속에 대략 80개 정도 들어있었다)를 사다 셋이 똑같이 나누어 주며 일주일간 간식이라고 하셨다. (나누어지지 않는 나머지는 엄마몫으로 챙겨두셨다)

물론 가끔씩 고구마 삶은 것도 있었고 엄마가 솜씨 좋게 만들어준 빵도 있었지만....


언니는 늘 20여 개의 사과를 이틀 만에 다 먹어치웠다.

나는 받은 사과를 냉장고에 순서대로 나열해서 일주일 안에 먹을 수 있는 개수를 정한 후 오늘 아침, 점심, 저녁 내일 아침, 점심, 저녁 이런 식으로 딱지를 붙여 계획적으로 먹으려 애썼다.

문제는 미리 다 먹어치운 언니가 마주 앉아 “맛있냐? 언니 안 주고 먹어서 좋아?”라며 협박과 애원을 동시에 해서 나의 마음을 늘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싫지만 먹을 때마다 한입씩 떼어주면 그렇게 좋아하며 나랑 잘 놀아줬다.

남동생은 두 누나 등쌀에 기를 못 피고 받은 사과를 다락이나 창틀에 숨겨두었다가 몰래몰래 먹곤 했었다. 이사할 때 다락에서, 창틀에서 발견된 미처 먹지 못한 썩은 사과는 남동생의 고충을 설명하고도 남았다.

엄마는 이런 미션을 통해 어쩌면 절제력과 소통능력을 키워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중학생이 되고 보니 당시 추첨으로 학교배정을 받던 때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를 걸어 다녔다)

일찍 집을 나선 아이들은 1교시가 끝나면 매점으로 달려가 당면이 듬뿍 든 야끼만두나 과자, 빵 등을 사 먹었다. 나는 용돈대신 아침마다 엄마가 빵을 만들어 가방에 넣어 주셨다.

매일 곰보빵(소보로빵)이나 고구마와 당근잼으로 만든 롤 케이크외에 용돈은 없었다.

그래서 매점에서 마음껏 사 먹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친구들에게 내빵과 만두를 반씩 교환해서 먹자고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빵은 정성이나 영양면에서 값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야끼만두 반 개와 곰보빵 반개 이런 식으로 바꿔먹기 시작했다. 물물교환을 생활화한 것이다.


교사가 되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 일을 어려워 하지 않는다”이다. 그리고 행사 때마다, 또는 대입 면접고사 지도도 시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스스로 기획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지금도 내가 만든 면접고사대비 모델이 잘 쓰이고 있다. )

내가 일을 피하지 않는 이유는 약간의 결핍과 문제상황을 많이 견뎌본 결과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언니교복을 물려 입었고 과외를 하고 싶을 때 엄마는 돈이 없어서 시켜줄 수 없다는 거절통보를 받았지만 나는 결국 과외 팀을 모아 공짜과외까지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렵다고 안된다고 할때 할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잘 해결하는 게 나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핵심역량 중 하나는 문제해결력이라고 한다.

문제해결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 상황에 놓여봐야만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정답을 찾는 지필고사뿐 아니라 역량을 알 수 있는 수행평가점수가 생각보다 높다.

대학에서도 그런 면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학생을 뽑고자 한다. 교사의 평가 즉 교과세특이나 행동발달사항을 통해 인성이나 문제해결력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는 집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고민해 보는 시간도 괜찮고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며 끙끙대는 긴 시간도 필요하다.

친구들과의 갈등도 스스로 해결해 낼 때까지 믿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너무 완벽하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얼마전 조선미 교수님의 유튜브영상에서 의대면접고사에 늦어 탈락위기의 학생에게

"어쩌다 늦었니?"라고 하자 "엄마가 늦게 데려다줘서요"라는 답변에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제발 아이의 모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 주는 부모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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