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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Aug 23. 2023

갑자기 얻은 휴가

-결혼 후 처음 가는 둘만의 여행-

우리 집의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갈등 유발자는 항상 애완견 보미이다.

보미가 우리의 새 가족이 되면서부터 외식 한번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용을 맡기고 잠시 급하게 밥을 먹어치우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애견 동반카페도 주위에 많이 생기고 애견동반 호텔이나 음식점도 전보다는 많긴 하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 수술을 받은 기억때문인지 사회성발달이 잘 안된듯하다. 무서워서 짖음이 심한 터라 애견동반할수 있는 곳도  마음대로 가기 힘들다.


은퇴하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팔도강산 유람에 나설 줄만 알았다.

남편은 제주도 출신답게 아침에 일어나 바다낚시를 하고 시원한 물회 한 사발을 드링킹 할 수 있는 생활을 항상 꿈꾼다.


며칠 전  드디어 일이 터졌다.

자기 혼자 거제도에 가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고향인 제주도는 조용히 쉴수가 없다. 길가다가도 반은 친구이거나 친척들과 마주친다)  제주도는 사방이 바다라 갇힌듯한 느낌이 싫단다. 거제도는 한쪽은 육지랑 붙어있어서 그게 너무 맘에 든단다.

나는 우리 보미를 돌봐줘야 그나마 딸이 자기 일을 할 수 있기에 선뜻 같이 간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는 남편이 혼자 운전하고 가는 것은 불안했다.

그래서 딸이 쉬는 날 함께 가서 짐을 정리해 주고 다음날 딸이 나가야 할 시간 전에 돌아오려고 마음먹었다.

남편은 늘 강아지가 먼저인 이런 생활이 짜증스럽고 혼자 가게 내버려 두는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혼자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세탁기에 유연제는 어떻게 넣어? 그리고 그냥 하이타이는 뿌려 넣는 거야?”

하이타이에서(진짜 옛날 사람) 나는 빵 터져버렸다.

요리 외에 집안일을 잘 안 해 본 남편이 슬슬 걱정이 되는지 이것저것 물어온다.

혼자 쩔쩔매고 살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고 속으로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봐야 가족의 소중함과 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길 것 같아서다.


딸이 갑자기 그렇게 멀리 가서 하룻밤만 자고 보미때문에 급하게 오게 되는 것이 안 됐는지

“엄마 모처럼 아빠랑 둘만의 여행인데 그냥 5박 6일 푹 쉬다 오슈. 내가 펜션이랑 다 예약해 줄게”

“보미는 어떻게 하고? 너 일하러도 못 갈 텐데”

“그냥 데리고 가볼게. 엄마 없는 월요일과 수요일이 문젠데 잘 견뎌볼게”

나는 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바로

“고마워 딸 잘 쉬고 올게”라고 선언해 버렸다.


막상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는지 며칠째 잠을 못 자는 딸을 보며 마음이 약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에 엄마아빠가 집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도와주는 존재인지 감사함을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자꾸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늘 외식이나 여행에 모시고 가려해도 그런 거 안 좋아한다며 함께 가기를 거부해 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셨다.

그래서 난 아이들이 어떤 제안을 해오면 덥석 받는 편이다

이번 5박 6일 여행도 그렇게 해서 갑자기 가게 되었다.

“엄마 체크카드에 돈 빵빵하게 넣어놓았으니 카드 막 긁어

엄마아빠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니까 재미있게 잘 놀다 와 돈 아끼지 말고 가격도 물어보지 말고 막 시켜 먹어 알았지? “ 라며 거제 맛집 편을 여러 개 보여주며 메모해 준다.

“걱정 마! 엄마 특기가 돈 쓰는 건데.... 엄만 외할머니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많아서

너희들이 해준다는 건 무조건 오케이다. 그러니까 행여 빈말은 하지 마라 "


부디 딸이 카드를 받아 들고 너무 많이 쓰고 와서 당황스러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보 준비됐지? 우리 맛있는 거 다 사 먹고 재미나게 놀다 오자”


갈 때는 둘이지만 올 때는 나 혼자가 될 예정이다.

결국 남편은 거제한달 살기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출발이 너무 기다려지고 한편으론 공황인 남편이 휴게소마다 쉴것 같아 걱정스럽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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