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공부 Apr 29. 2023

누가 주방장이야?

-생일상의 동상이몽-

아들과 딸은 확연하게 성격도, 좋아하는 음식도 달랐다.

생일도 아들은 친구들을 집에 많이 초대하고 싶어 했고, 깍쟁이 딸은  절대 세 명을 넘지 않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 내 생일에 오고 싶다는 애들이 많아서... 한 18명 정도 초대해도 돼요?”

며칠이 지나서 “엄마 그런데 인원이 좀 늘어날 것 같아요 한 24명 정도 될 것 같은데...”

며칠 후에는 “엄마 초대 못 받은 아이들이 서운해 해서 그냥 다 오라 했어요”

.....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이미 아이들에게 말을 한 것 같아 그 많은 아이들을 접대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김밥을 부지런히 말고 카레가루 살짝 묻혀 닭 어깨봉을 튀겨내고 식빵 위에 쇠고기와 양파를 섞어 볶은 후 피망, 송이버섯, 치즈를 올려 부지런히 오븐에 구워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과 과자존도 만들고 각종 과일로 시원하게 만든 주스도 수없이 갈아 준비했다. 케이크도 있고 후식으로 내어줄 밀크셰이크 만들 것까지 준비를 해놓아서 이 정도면 간식으로 먹는 생일상으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선을 생각해서 뷔페식으로 차려두면 접시에 담아 친한 아이들끼리 앉고 싶은 데 가서 앉아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다 오라 한다고 100% 아이들이 다 오지는 않을 것 같아 30명 정도를 생각하고 준비를 해두었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밀려들어올 때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 놓은 동선과 식사자리와는 거리가 멀게 수시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수 조차 세기 어려웠다. (나중에 물어보니 37명이라고 한다)

700명 이상을 통솔하는 학년부장의 마인드로도 감당이 안 되는 아이들의 움직임에 거의 혼이 나갔다.

“아줌마 전 보리차 안 먹고 생수만 먹는데 생수는 없어요?”

안 그래도 음식이 모자라 배달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닭을 한 입만 먹고 쌓아두는 애가 있어서 “맛이 없어서 그러니? 왜 한 입만 먹고 버리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저 원래 집에서도 이렇게만 먹는데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준비한 음식이 턱없이 부족해서 치킨 몇 마리를 추가로 배달시키고 피자도 몇 판을 더 주문했다.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생일 파티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하필 책상 밑에 들어가서 드래곤볼에 빠진 아이도 있고 베란다에 나가 노는 아이들도 있고 안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초토화되었다.

준비한 음식에 더해 배달된 음식까지 다 바닥이 났고 아들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했던  밀크셰이크는 혼이 나가서 하지도 못하고 냉동실에 몇 개 남은 아이스크림까지 게임 상품으로 다 나갔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시간이 지나 학원시간에 쫓겨 아이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나는 그날 몸살이 났다.

엄마가 자기의 생일잔치 후에 아팠던 기억이 너무 충격이었던지 그 후로 아들은 한 번도 생일날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다.


엊그제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집밥을 먹으러 아들이 왔다.

이제 훌쩍 커버려 30대인 아들,딸에게 생일 선물대신 엄마의 정성을 담은 생일상으로 대신한 지 꽤 오래되었다. 3월인 딸의 생일에는 오히려 자신의 생일을 있게 해 준 엄마아빠에게 감사하다며 두둑한 용돈을 받았다.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 딸은 늘 자신의 생일에 오히려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혹여나 우리 아들도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


이제 친구들 중 반은 애기아빠가 되어 자신의 생일날이라고 만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유일한 생일상이 된듯하다.


나는 남편을 주방장으로 치켜세워주며 야채손질이며 요리에 필요한 것 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준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대로 끓이거나 볶으면 되도록 옆에서 돕는다. 그런데 생일에 갈비찜과 잡채면 됐지 왜 자꾸 멸치볶음에 오징어채를 볶자고 하냐며 내가 준비한 멸치를 보더니 의아해했다.

“참 이 사람이.... 이따 아들 오면 잘 보슈 아무리 갈비찜이나 회가 있어도 걔는 꼭 멸치볶음을 먹는 다니까?” 남편은 갑자기 나를 향해 “ 나보고 주방장이라더니 말로만이고 내가 보조구먼”

나는 일하다 말고 누가 주방장이냐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남편에게 웃음이 났다.

“왜?.... 내가 야채 같은 거 다듬고 주방장이 쉽게 할 수 있게 다 준비해 놓으니까 내가 보조고 자기가 주방장이지”

“누가 주방장한테 이거 해! 하지 마! 명령하냐? 그러니까 내가 보조지”

내가 멸치볶음을 하라는 말에 꼼짝없이 프라이팬에 잔멸치를 볶고 있는 자신을 보조라며 억울해하는 남편 때문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자전만 하면 돼 우리 아들 감자 갈아서 부친 거 잘 먹잖아 그것만 하고 마무리하자” 남편은 반찬 많은데...... 까지만 말하고 내 눈빛을 보고 얼른 팬에 기름을 두른다.

에구... 저렇게 아들을 몰라



아들은 갈비찜에 잡채도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둘이 싸우다시피 하면서 볶아낸 멸치볶음도 감자전도 맛있게 두 그릇을 비우고 갔다.


조용해진 밤에 남편이 아들을 모른다고 잔뜩 구박했던 하루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아들은 멸치볶음이 좋은 게 아니라 밥상에 올려놓은  엄마의 정성을 봐서 골고루 먹어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이 친구들에게 롯데리아보다 맛있다며 자랑한 밀크세이크 만드는법 (집에서 간단히 해보세요)

(500ML 우유 얼렸다 살짝 녹은 상태+ 날계란 1+ 야구루트 4개를 함께 갈면됩니다: 3컵 반 정도의 밀크셰이크가 됨)계절이나 취향에 따라 바나나, 딸기를 넣어도 됨

매거진의 이전글 할 일이 있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