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품에 안긴 바다사자-
그동안 나의 삶 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당연하지만 아이들이었다.
여행 중에 주로 많이 다툰 이유도 생각해 보니 아이들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텔에서 푹 쉬는 것을 좋아했다.
심심한 아이들은 호텔수영장만 들락거렸고 맛집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대부분 비싼 팁이 붙어있는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자 해서 나는 늘 불만스러웠다.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이 답답해할 만한 그런 여행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덜 사랑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남편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늘 화가 폭발해 버렸었다.
40년 만에 단 둘이 여행을 온건 처음이다.
이제 아이들을 살피지 않아도 되니 그냥 남편이 편한 대로 해주자 마음먹었다.
아침에 갈매기 소리와 함께 눈을 떠서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저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동안 왜 못해줬을까?
오랜만에 자신의 수영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바다로 뛰어들어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나를 향해 손을 들고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바다 내음을 맡으며 행복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바다사자를 너무 오래 육지에만 살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신이 난 아빠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며 여행비용을 대준 딸도, 한 달 살기 비용을 보내준 아들도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검색한 맛집을 순서대로 가볼 요량으로 남편에게 메뉴표를 보여주었다.
“회만 계속 먹으면 질리니까... 회는 1일 1식이야 ”
남편은 내가 준 메뉴표를 보고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다 계획해 두었냐며 내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예정한 식당으로 향했다.
네비를 찍어보니 38분이 찍혔다.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계획이 엉망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꼭 그렇게 38분씩이나 되는 거리를 가야 돼? 저기 저 백숙집 있네 당신 몸보신하게 백숙 먹는 건 어때?”
나는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갑자기 앵그리손이 되려고 했다.
“왜?? 싫어?”
“그럼 좋겠냐? 우리가 집에서 백숙을 못 먹어봐서 여기까지 와서 백숙을 먹냐고”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질러댔다.
눈치를 챙긴 남편은 조용히 내가 찍어준 곳으로 갔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화를 내며 시간을 들여 찾아갔는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다.
다행히 갈치구이도 멸치쌈밥도 너무 맛있었다. 남편이 처음으로 밥을 두 공기 먹는 것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남편이 낚시를 하러 나간 동안 내 리스트를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한 달 살기 숙소만 알아봤지 딸의 제안에 급하게 잡은 휴가가 된 셈이라 내가 뽑은 리스트 중에는 숙소에서 먼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써 검색해 둔 분위기 좋은 카페나 여행지는 다 지워버렸다.
어차피 남편과 함께 가기 힘들겠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노부부만의 여행인 만큼 가능하면 남편의 마음이 편하게 쉬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공들여 검색한 것을 지워버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숙소에서 남편이 낚시하는 모습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나도 편했다.
바다 하나만으로 수영과 낚시를 하며 너무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니 왠지 한달살이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노후 정착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