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진로선택은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게 되죠(3)-
언니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음악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결혼할 남자라며 손을 잡고 나타났다.
긴 장발머리부터 맘에 안 들었다. 언니가 대학교 2학년 이었고 그남자는 3학년 재학중이었다.
서울대 음대를 다니는데 줄리어드 음대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며 언니와 함께 가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기억에 분노한 엄마가 그 남자한테 뭔가를 집어던졌고 언니도 함께 나갔던 것만 기억이 남는다.)
언니는 그 후로 세상에 대해 아무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젠 대놓고 술, 담배를 버젓이 했고 엄마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대를 입학해서 간화학과로 겨우 졸업은 했지만 그 후로 한 번도 병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공공 기관에 억지로 취직은 했지만 몇 달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만난 지 두 달도 안된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다.
엄마는 그동안 언니 때문에 속상할때마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몸져 누우셨다.
그럴 때마다 죽을 끓여 엄마를 간호하며 언니만 자식 아니니까 힘을 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엄마를 일으켜 세운건 나였다.
한눈에 형부가 될 사람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얄상한 눈에 눈웃음을 살살치며 엄마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이 너무 야비해 보였다.
그리고 두 달도 안되어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난 믿을 수 없었다.
언니는 자신을 학대하며 엄마에게 반항하는 것처럼 보여서 너무 슬펐다.
결혼식전날 언니와 함께 누워있는 마지막 밤에 나는 펑펑 울었다.
이불하나로 같이 덮고 자야 했는데 늘 언니랑 싸워서 훽하고 돌아누워 등이 시리게 잤던 수많은 밤이 후회스러웠다. 동생인데 언니한테 살갑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언니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웃어주었다.
(나는 이럴때 언니도 너한테 고맙고 미안한게 많았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결혼식날 너무 울어서 사돈의 손에 이끌려 식장을 쫓겨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예전에 형부와 사귀다 헤어진 여자인 줄 알았단다. 결혼식에 너무 울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척들과 집으로 돌아오니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미국에서 편지가 와있었던 것이다. 줄리어드 음대로 유학을 떠난 언니의 남자친구!!
난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편지를 열어보았다.
제일 첫 구절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 혹시 이사 등으로 이 편지를 다른 분이 받으셨다면 그녀를 찾아서 꼭 전해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이 편지는 꼭 그녀에게 전해져야만 합니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필 언니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자기가 미국에서 성공해서 유명한 음악가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활동사진과 함께 이젠 당당하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이 편지를 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결정도 본인의 몫인데 전해주지 않은 것도 미안하다.
결국 언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
형부로 인해 나는 형부의 보증인으로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친정일이라 남편에게 처음에 알리지 않은것도 내 잘못이었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결국 남편은 공황장애를 갖게 되었다)
언니는 결국 이혼을 했고 언니와 조카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불편한 동거도 했었다.
언니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결국 여러 스트레스가 쌓여 간암으로 40대에 이 세상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고 훨훨 자유를 찾아갔다.
나는 언니가 억지로 의대를 가지만 않았다면 훨씬 더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본다.
의대 ....그게 뭐라구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려 했던 엄마도 결국은 언니를 사랑해서 했던 일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