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념이 없던 철부지시절-
“엄마! 그때 비싼 화장품 사지 말고 명품가방 좀 사두지 그랬어! 그랬음 나한테 다 물려주고 얼마나 좋아”
갑자기 산보를 하다가 딸이 툭 던진 한마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젊은 시절 나는 정말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부부교사로 출발을 했지만 남편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다.
특히 자신이 수업 외 업무를 맡아야 하는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매일 그만두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더구나 당시 전국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 수학교사였다.
당시에는 모의고사 시험 수준이 전교에서 1등 하는 아이가 78점을 맞을 정도로 어렵게 출제되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모범답안이 나오기 전에는 풀이를 해주기 꺼려하던 때였다.
남편은 겁도 없이 감독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 아이들에게 채점해 보라며 정답이라고 가르쳐 주고 나왔다고 한다. 교무실에서는 그러다 틀리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냐고 모범답안 나올 때까지 걱정을 해주었는데 후에 나온 모범답안과 똑같아서 아이들에게 수학의 신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여졌다.
그 후로 몸값이 더 치솟았다.
사실 나는 부부교사가 좋아서 결혼한 건데 남편은 성공할 확신이 있다며 자꾸만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결국 일을 저질렀다. 사표를 내고 나온 것이다. 여기저기 학원가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나 보다.
“깨가 수백만 번을 도는 것보다 호박이 한 바퀴 도는 게 낫잖아 학교에 다녀봤자 비전이 없다니까”
남편은 나에게 퇴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남편은 자기 학원을 열었고 과외수업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한 달에 내 월급보다 몇 배는 넘는 돈을 가져다 주니 그만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남편은 주말에 자신이 수업을 하는 동안 항상 분당에 있는 백화점에 데려다 놓았다.
두 시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장도 보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백화점의 VIP고객이 되었다.
그때 나는 S화장품에 꽂혔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예쁜 서정희 씨가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물가로도 스킨 하나에 10만원 정도라서 추천해 주는 대로 구입하면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 화장품을 쓰면 그녀처럼 예뻐질 거라는 야릇한 상상을 하며 뭐에 홀린 듯 사 들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학교에 다닐 때보다 남편이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아 더 흥청망청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엄마 곁에서 비싼 화장품을 권하는 대로 사들이는 것을 지켜봤을 딸아이가 그때의 일을 기억해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때보다 명품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왜 명품을 소비하는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도 있어 보인다
“엄마 잘 생각해 봐 엄마가 가죽 가방을 30~40만 원 주고 사잖아.
그런데 그거 쓰다 싫증 나면 끝이고 잘못 보관하면 각이 무너져 못쓰잖아
그런데 명품을 사면 실컷 들다 몇 년 뒤에 팔아도 본전은 나오고(요즘 해마다 상승하여)
각이 무너지면 수리나 교환도 해주니 그게 이득 아님?”
어느 날부터 딸이 나에게 묘하게 설득력 있게 명품가방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0년간 쓰던 가방값이 계속 올라 10년을 실컷 쓰고도 샀을때 가격으로 당근에서 팔았다는 영상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그래서인지 명품가방은 요즘 결혼 필수 예물이기도 한것 같다.
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비싼 화장품으로 내 얼굴이 그녀처럼 더 예뻐지지도 않았고, 비싼 화장품 가격이 내 품위를 높여주거나 더 좋게 하는 것도 아닌데 …
차라리 그 돈으로 명품가방을 사두었더라면 남는 거라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속이 쓰리다.
“딸아 미안해 엄마가 너에게 명품가방은 못 물려줬지만 명품가방 살 수 있는 능력은 물려주지 않았니? 그걸로 퉁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