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공부 Nov 10. 2023

자본주의의 매운맛

-서열변동이 생겼어요-

우리 아들, 딸은 30대 후반의 싱글이다.

대부분 결혼을 해서 분가할 나이임에도 우리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딸은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아직 결혼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는듯하다.

그렇다고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딸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언제 그렇게 사람에 대해 많이 연구했는지 자기만의 가치관이 뚜렷하다.

그래서 실수할 것 같지는 않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돈이 권력이라는 생각이다.

남편은 공황장애로 수업도 점점 줄이고 현재는 책만 쓰고 있다.

나에게는 교사의 연금과 이따금의 강연활동수익이 있다.

그래서 나의 연금을 사이좋게 나눠 쓰며 둘이 먹고 싶은 거 사 먹는 정도로만 사용한다.

대부분의 큰돈은 딸이 다 부담하기 때문이다.


가령 O마트에 내가 살 것을 담아놓으면 어느새 결제를 해놓는다.

옷이나 화장품까지 자기 것을 사기 전에 꼭 엄마 아빠 것을 먼저 사주는 착한 딸이다.

옷도 자기와 똑같은 것을 색만 다르게 같이 커플로 입자고 한다.

딸과의 커플룩은 원치 않지만 거의 반 강제적이다.

연금을 쪼개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는 건 힘들지만  딸의 통 큰 결제덕에 호강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연금이지만 현재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문제는 코로나 때부터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 집 서열 1위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속물근성이 있어서인지 요즘에는 나도 모르게 딸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가끔 보미(우리 집 반려노견) 때문에 언성을 높이기라도 하면 서러울 때가 있다.

“엄마가 고기 주면 꼭 탈 나더라 대체 뭘 준거야....”

똑같이 고기를 구워 주어도 자기가 준 것은 괜찮고 내가 준 것 때문에 탈이 났다는 말에 순간 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른들이 남편돈은 당당하게 받아도 자식돈은 서럽다고 했나 보다.

어느새 목청이 커진 딸에게 이따금씩 서운한 감정도 든다.

때론 딸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매달 친정엄마에게 용돈과 생활비를 다 드리고부턴 내 목소리도 커졌던 것 같다

그때 친정 엄마가 느꼈을  여러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더 슬플 때가 있다.


 그리고 보미에 관련해서는 특히 귀에 피딱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빨리 분가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내가 당해보니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는 잔소리이다.

가만히 있어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수시로 잔소리를 해대면 욱하는 마음에 꼭 반대로 하고 싶다.

나는 아이들 키울 때 잔소리를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딸은 불안증세가 있다.

아빠처럼 공황증세도 가끔 보여 숨이 안 쉬어질 때도 있고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몸이 차가워질 때도 있다.

잔소리는  자신이 불안해서 나오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예전에 남편은 이렇게 예쁜 딸을 어느 놈에게 보내겠냐며 결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나는 우리 아들은 빨리 좋은 짝을 만났으면 좋겠고 딸은 좀 천천히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생각이 변했다.

어서 너그럽게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가슴이 넓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의 매운맛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그래도 부모를 위해 뭐든 다 해주려는 딸의 고마운 마음만은 기특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품화장품대신 명품가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