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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Nov 18. 2023

집안 곳곳에 흉기가

나는 뼈대가 굵고 튼실하다. 그래서 날카롭고 예리한 곳이 별로 없다.

그중에 가장 예리하고 곧게 뻗은 코가 그나마 제일 얄상하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 우리 식구 모두 거의 아치를 그리며 뒤로 넘어가지만 나는 꼿꼿하게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는 뻣뻣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편이 울적할 때마다 한 번씩 보여달라며 매일 놀린다.

나는 웬만하면 다쳐도 자가치료하거나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그런데 남편은 손에 조그마한 가시랭이하나라도 호들갑을 떨고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붕대를 칭칭 감는 모습은 내 눈에 늘 우습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조그만 상처 하나에도 딸과 남편이 동시에 달려들어 의사놀이를 해대는 통에 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판교에 있는 oo백화점에 딸이 볼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남편이 보미를(우리집 서열 0순위 반려견) 봐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도 자주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보미가 전처럼 내가 나가도 울지않고 기다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보미가 울고 엄마를 찾는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졌다.

점심도 안먹고 백화점에서 맛있는걸 사 먹기로 했는데  보미가 울어대면 난감한 상황을 뻔히 알기에 여유롭게 밥을 사먹고 있을수가 없었다.

결국 딸의 용무만 보고 급하게 돌아가는데 택시는 분당시내를 한바퀴돌아 이상하게 막히는 길로, 막히는 길로만 계속 돌아  평소 내가 운전해서 다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걸렸다.


나는 평소에는 별로 안좋아 하는데 너무 배가 고플때만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남편이 부엌을 점령하고 유튜브에서 본 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김치를 썰어 준비한다고 움직이다 그만 가위를 발등에 떨어뜨렸다.

무안해서 남편 몰래 피를 닦아내고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났다.

하는 수 없이 남편에게 보였더니 예상한 반응대로 호들갑(?)이 시작되었다.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다행히 금방 피가 그쳤다.  나는 피곤했고 결국 라면도 먹지 못했다.  괜찮다고 버티다 저녁을  먹는둥마는둥 야간 진료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도 찍고 다시 소독하고 파상풍주사에 항생제까지 주사를 두 대나 맞았다.

그런데 야간진료 선생님은 내일 원장님께 보이고 수술을 하던지 꿰매던지 해야 한다며 다음날 아침 9시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혹시 수술할 수도 있으니 금식까지 하라는 것이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금식이라는 말에 더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짜증이 났다. 그냥 내일 병원에 가면 될걸 ….야간진료까지 오고 수술이야기까지 나오니 황당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남편은 금속성분에 붙어있는 균이 몸에 들어가면 큰일이라며 파상풍주사를 맞아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짜증을 내는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치료끝나고 가는길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마치 애 달래듯 하는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어버렸다.


다음날 그동안 아플때 마다 찾았던 단골(?) 정형외과 선생님께 갔다. 한 두어바늘만 꿰매면 되겠는데....

다행히 뼈에 금도 안 가고 힘줄도 괜찮아서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냉동실 고기덩어리가 떨어져 뼈가 부스러져 오는 사람도 있다며  집안에서 다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갑자기 남편은 집안 곳곳에 흉기가 많아 두꺼운 털 실내화를 꼭 신어야 겠다며 실내화를 주문했다.

그리고 환자는 절대 안정이라고 점심도 O도시락집에서 배달시켜 주었다.

2주 동안 덜 움직이는 게 좋다며 누가 보면 크게 다친 것 같이 감아준 붕대가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진짜 수술을 안 하게 되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리고 2주간 나는 모든 가사일에서 열외를 받을수 있었다. 어제 실밥을 제거하고 나니 남편이 갑자기 잡채밥이 먹고 싶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바짝 군기가 든 병사처럼

“ 잡채밥 실시”라며 부엌으로 향했다.

남편은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한다

“ 부엌에 흉기 많습니다 잘할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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