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병명을 모르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

-병을 얻고 알게된 진정함 감사 (2)-

by 집공부

대학병원은 내가 입원하고 싶다고 쉽게 입원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입원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적어도 3달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나 2인실이라도 오겠냐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사실 갑자기 부정맥이 심해져 숨이 안 쉬어질 것 같은 증상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수술로 부정맥의 원인인 이 혹을 꼭 제거해야만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빨라진 입원으로 급하게 병가처리를 했다.

3학년 담임이었기에 다가오는 2학기는 원서 상담 등 중요한 일이 많아

담임도 교체해줄 것을 요청했다.


병원에 와보니 그동안 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산부인과 외에는 입원 경험이 전무하여 모든 게 낯설었다.

나의 좌충우돌 병원생활은 환자복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환자복은 나의 긴팔과 긴 다리를 다 담아내지 못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냈다.

나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애써 밝은 생각만 하려고 애썼다.


2인실이라서 함께 생활해야 할 환자도 중요하다.

다행히 나보다 언니뻘인데 인상이 좋아 보여 모든 게 순조로운 것 같았다.


병실 정리가 끝나자마자 나는 간호사에 이끌려 여러 가지 추가 촬영을 하고 올라왔다.

방에 들어서니 처음 인사 나눌 때와 다른 분이 앉아 있었다.

얼굴이 반쯤 돌아가 있는 이상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은 이 상황이 걱정이 되어 발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엄마의 입원으로 불안해할 아이들한테 빨리 가보라며 억지로 등을 떠밀어 보냈다.

내 표정을 보고 마음을 간파한 아주머니(앞으로는 언니로 지칭)는 비뚤어진 입으로 간신히 소리를 내어

“나 약기운 떨어져서 그래~ 놀라지 마”


저녁이 되어 간호사가 주는 약을 먹자마자 언니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약기운 있을 때 빨리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와야 된다는 것이다.

뇌신경외과에서 치료하는 걸 보니 뇌와 관계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그분의 주치의가 방문하여 계속 자 같은 물건으로 머리를 치면서

“아파요?(딱! 딱!) 이렇게 하면요 어디가 더 아프세요?”

계속 한 사람이 나가면 다른 사람이 교대로 들어와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슬슬 짜증이 났다.

아마 아침에 교수님께 보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이 관찰하려는 욕심에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병 고치러 왔다가 맞아서 죽겠어요 아프시다잖아요.... 그만 좀 하세요”

“병원에 입원해서 없던 병도 더 생기겠네”

물론 구타하듯이 때리지는 않았지만 자꾸 여러 번 같은 자극에 너무 괴로워하는 언니대신 항의를 했다.

대학병원은 레지던트들이 자기의 연구를 위해 환자를 관찰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나의 거친 항의에 다음에 들어온 의사는 조용히 언니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언제나 오려나 기다리다 그만 지쳐서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6시가 다 되어 녹초가 되어 온 언니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밑으로 끌려가서 계속 그렇게 “아파요? 어디가 더 아파요?”만 하다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뭔가 중요한 치료 목적일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고통을 호소했다)

신경이 어디에 얼마나 살아있나 알아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은데 꼭 그렇게 때려서

아프냐고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는지 정말 궁금했다.


언니의 얘기에 공감하며 같이 화를 내는 나에게 동지애를 느꼈는지 하루 만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약기운이 돌 때면 마치 예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무능력하고 책임감이 부족한 남편 대신 가장 노릇도 병행하며 산 세월을 쉼 없이 쏟아냈다.

보험업으로 가정살림을 크게 일으켜 이제 살만하다 생각했을 때 병이 찾아왔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전신 중증 근육 무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번째 입원 중이란다.

원래는 약 한 알만 먹고도 하루를 지낼 수 있으면 평생 조금씩 약을 늘여가면서라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퇴원 후에 한 알로 하루도 버티지 못했고 약기운이 떨어지면 안면이 돌아가고 길을 가다가도 쓰러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약을 점점 더 많이 먹어야만 지낼 수 있어서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단다.


내 병명도 참 희귀병인데 근무력증도 너무 무서운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젊은 나이와 수술만 하면 고칠 수 있다는 나의 상황을 부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스러웠다.

나는 매일 수발을 드는 언니의 착한 아들이 없을 때는 자청해서 도우미 역할을 해주기로 마음 없었다.

우리는 서로 건강이 회복되기를 응원하며 동지애를 느끼게 되었다.


# <병을 얻고 알게 된 진정한 감사>라는 주제는 10편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혹시 갈색세포종이나 기타 병을 극복하시면서 느낀 점 있으면 생각을 함께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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