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그건 진짜 오해야

-병을 얻고 알게된 진정한 감사(4)-

by 집공부

나의 하루는 변함없이 계단 오르기로 시작한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몇 년은 지난 듯 익숙해진 병원생활이다.

아침에 주치의 선생님이 다녀간 후에 언니가 혼자 웃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며칠 전까지 함께 있었던 아가씨 생각이 나서라고 했다.

항문외과 수술을 받았기에 아침마다 엎드려서 항문을 치켜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기도 민망했지만 아파서 그런지 성격도 까칠했단다.

같이 쓰는 냉장고도 혼자 독차지했고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단다.


요즘은 매일 웃으며 수다를 떨다 보면 마치 수학여행 와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병원을 호텔로 생각하고 즐겁게 지내기로 했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병원 복도가 시끄러웠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단체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음료수를 챙겨 재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낙엽이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소리를 내어 웃는 중3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병원과는 맞지 않았다.


“선생님!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뭘??”

내가 병가를 냈다는 사실이 전교에 알려지면서 학교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1등을 못해서 화병으로 입원하게 됐다는 황당한 소문이다.

아이들 다운 발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담임을 맡았다.

그리고 어느 해나 내가 맡은 반은 항상 시험에서 1등을 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내가 학급 담임으로 소개되면 탄식과 환호가 교차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담임이라는 판단인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거짓말로 첫인사를 한다.

착하고 예쁜 애들이 많은 반이라 선생님이 일부러 골라서 담임을 맡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우리 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고 수없이 거짓말을 해댔다.

아이들은 내가 해준 거짓말대로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이고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업 분위기가 좋으니 성적은 저절로 좋아졌다.

수시로 쪽지시험을 보는 것도 효과적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협력학습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그 시간만 집중해서 공부를 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학습량이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항상 자리배치에 신경을 쓴다.

(내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뽑기를 해서 자리를 앉히는 것이다.)

적어도 담임교사는 자기 반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겠다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나는 성적을 고려하여 자리배치를 해준다.

(나의 경험을 담은 [진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비밀 집 공부] p61에 자세한 방법이 담겨있다]

그 결과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협업 학습이 가능하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선생님 놀이를 통해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해볼 기회가 있어서 이익이고, 성적이 좀 떨어진 아이들은 친구들의 설명에 질문하고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해마다 어느 반을 맡든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비결이다.


그해 첫 중간고사에서 12 학급 중 9등을 했다.

그리고 바로 입원을 하게 되니 순진한 아이들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본의 아니게 학급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 성적 파악도 못했었고 3월부터 중간고사 때 까지는 번호대로 자리를 배치하는데

자리를 어떻게 바꿨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3월에는 선생님들이 이름을 익히기 가장 쉬운 방법이 출석부에 기재된 번호순으로 좌석배치를 해준다. 이름을 알아야 수업이 더 활력 있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안양에서 서울까지 오다가 혹여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우리 반 담임업무를 맡은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병문안 자제와 함께 자리배치에 대해 조심스레 나의 방법을 제안해 드렸다.


병원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엄마의 도움 덕분에 학교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는 생각!

그동안 자신감 넘치게 일할 수 있게 허락하신 건강!

나의 꿈과 희망이었던 교사라는 직업! 그리고 함께하는 예쁜 아이들!

그동안 수없이 많이 가지고도 감사함을 몰랐던 어리석음까지....

병원에서 맞이한 밤은

감사함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한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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