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얻고 알게 된 진정한 감사(6)-
매일 할 일없이 병원을 배회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수술을 잘 받기 위해 기계를 부착하고 병원 투어에 나섰다.
“쓰리고!” 계단을 올라가니 다른 병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광경이 펼쳐졌다.
“ 났어 났어 스톱” 나는 순간 병원을 이탈하여 다른 곳에 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나와 같은 환자복만 입었지 전혀 병원과 상관없는 사람들 같았다.
그곳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람을 쳐다보는 눈초리도 기분 나빴고, 걸어 다니는 내내 들리는 육두문자도 싫었다.
게다가 담배연기까지 자욱한 이상한 병동이었다.
나는 급하게 왔던 길을 되짚어 나의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에 돌아가니 새로운 동거인이 들어왔다.
언니가 나가자마자 바뀐 파트너인 셈이다.
나처럼 링거병도 달지 않았고 나를 의식하지도 않고 병원에 익숙한 듯 행동했다.
조금 있다 간병인이 찾아왔다.
나는 조심스레 무슨 병인지 물어보았다.
“아... 이분은 장기 기증자예요 내일 수술할 거예요”
어머 세상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첫인상이 맘에 안 들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분주하게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며 혈압도 재고 침대에는 금식이라는 팻말이 붙었다.
며칠 후에 있을 수술 때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덩달아 긴장되었다.
나는 최대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TV도 끄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내일 수술이 잘되어 장기를 기증받는 사람도 함께 건강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 장기 (콩팥)까지 내어줄 수 있을까?
키는 작아도 큰 사람 같았다.
괜스레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한 나의 경솔함도 부끄러웠다.
그날은 쓸데없는 잡념으로 잠이 오질 않아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미친 OO놈아! OO!!”
수술에서 돌아온 그녀는 마치 술에 취한 듯했다.
계속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육두문자를 마치 랩 하듯이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사람은 마취에서 깰 때 본의 아니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게 된다던데
남편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느껴졌다.
게다가 목청도 너무 커서 도저히 계속해서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을 병원을 배회하다 방에 들어갔다.
어제 본 간병인이 와서 수발을 들고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가 진통제를 주고 나서인지 편안하게 자는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수술 후 잠시 간병인이 왔다 간 이후 병시중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간병인 대신 화장실도 데려다주고 졸지에 간병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어이없게 그 간병인은 신장이식 환자 세 명을 함께 돌보고 있었다.
간병인은 어리바리한 나에게 여러 가지 병원생활 꿀 팁을 알려주었다.
또 간호사에게 장기입원환자로서 환자복과 침대 시트까지 교체해달라고 요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새 시트에 우스꽝스러운 환자복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또 어제 본 장기매매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제 “쓰리고”를 외치던 사람들이 장기이식자(매매자)들이었던 것이다.
장기 거래를 병원 측에서 알지 못하도록 교회를 통한다던지 여러 방법으로 순수 기증자로 등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개인이 매니저 역할을 하여 모든 일을 다 처리해준단다
연예 기획사처럼 그들은 중간에서 몇 %를 떼어가기도 한단다.
유흥을 즐기다 카드빚 때문에 장기를 매매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는 수술을 다 마쳤는데 중개인이 돈을 다 챙겨 도망 가버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날 간병인으로부터 나는 영화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나중에 간병인은 나와 같은 병실에 있는 이 여자도 장기매매자라고 비밀스레 알려줬다.
남편도 얼마 전에 같은 수술을 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런 남편이 수술 후 간병인과 바람이 났다는 알고 싶지 않은 일까지 알게되었다.
나는 한편으론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짠하고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 중에 비뚤어지고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사랑받지 못한 상처가 크다.
나는 우리 반 아이와 닮아있는 그 여자의 거칠고 일부러 센척하는 태도가
험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가 빠져나오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수시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뭔가를 사 오라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매일 넘쳐나는 수박과 먹을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배달되곤 했다.
그리고 퇴원에 앞서 언쟁을 하는 전화로 한 시간을 매달렸다.
“내가 아직 부기가 안 빠져서 옷이 안 들어간다니까!!
그래서 퇴원할 때 입을 외출복 하나 사 오라는 게 뭐가 문제냐고요!”
그동안 대부분의 전화통화는 기증받은 가족 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수록 약속한 것 이상의 요구가 많았었는지 가족들이 거절을 하자 언성이 높아졌다.
참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장기를 매매해서라도 병을 치료받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장기를 팔아서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들
지난 며칠 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를 눈으로 보게 하셨다.
그동안 나는 이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이 가졌으면서도 내 욕심대로 안 될 때마다 남편을 미워하고 짜증 냈던 일이 떠올랐다.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면 주어진 삶을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가치 있게 살겠노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