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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에서 배우는 지혜

-아이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

by 집공부

“엄마, 저 자퇴하고 싶어요.”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퇴근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의 눈치를 살피던 아들이 불쑥 꺼낸 말이다. 순간 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니?”

“학교는 다닐수록 손해예요.”

나는 매일 밤 10시 너머까지 자율학습 지도를 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보람으로 살았다. 그런 나에게 아들이 던진 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학교를 다닐수록 손해라니….

이 세상에 학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이미 자신이 잘 아는 것을 배우니 흥미가 없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가 힘들고 지루하다. 그래서 학교가 좋아서 다니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퇴를 하겠다고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이 꽤 많다. 학교는 다닐수록 손해라며 자퇴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에만 몰두해 보겠다는 아이들도 있었고, 매일 와서 하는 일이라곤 야단맞는 일밖에 없는데 굳이 다니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해봐.”

그러면 아이들이 오히려 당황해서 멈칫한다.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돼요?”라고 되레 항의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의 열린 말문을 붙들고 한참을 얘기하면,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선생님, 자퇴는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결정할게요.”라며 돌아간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의연하게 대처했는데, 막상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들으니 평정심이 흐트러졌다.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내 아이한테 들은 이 말은 유독 더 아팠다.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변화를 만든다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아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도 한번 들어보세요.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매일 선생님들이 들어오셔서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안 좋다고 야단만 치고, 단체기합을 주신단 말에요. 수업태도가 안 좋은 게 내 잘못도 아니고… 차라리 자퇴하고 독서실을 다니면서 제가 알아서 공부할게요.”

“알았어. 자퇴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한번 자퇴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일주일만 생각해보자.”

아들을 간신히 달래놓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었던 때라 그런지 그 뒤로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자퇴 얘기가 또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아들도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눈치였다. 새벽녘 식탁에 앉아 조용조용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읽었던 이솝우화 중에 살면서 자꾸 되새기게 되는 것이 있다. 바람과 태양이 주는 교훈이다. 나그네가 옷을 벗게 하려고 태양과 바람은 시합을 했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옷깃을 더 여몄고, 반대로 따뜻한 태양 볕이 내리쬐자 나그네는 더워서 스스로 옷을 벗었다.

나는 내 주장을 앞세우는 대신, “엄마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애썼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이는 한층 밝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3학년이 빨리 될 걸 그랬어요. 선생님들도 너무 좋고 애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가 재미있어요.”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당시에 내가 초조한 마음에 아들에게 “자퇴라니,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며 무시하거나 생각을 억지로 돌리기 위해 강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들은 반발심에 자퇴를 하겠다고 고집을 세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큰 마찰 없이 자퇴를 철회할 수 있었다.

부모들은 항상 아이가 불안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간다. 우리는 그걸 기다려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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